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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화장실
양병택
2022. 8. 27. 08:53

‘서울의 고층 빌딩을 바라볼 때 나는 그 속의 파이프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을 X의 폭포를 생각한다. (…) 서울의 이 거대하고 운명적인 X을 생각하면서 나는 문득 삶에 대한 경건성을 회복한다.’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가 소년 시절인 1950년대 분뇨로 넘쳐난 서울 골목길을 회상하며 쓴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요즘 서울시는 분뇨를 하루 1만1844㎥(2020년 기준) 처리하고 있다. 이 작업이 닷새 정도만 지연되면 도시는 마비된다.
▶18세기 유럽의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분뇨 처리였다. 2층 이상에 사는 사람들은 요강이 차면 하수구나 길거리에 그냥 부어 버렸다. 당시 유럽 도시의 길거리 위생 상태는 최악이었다. 여성들은 외출할 때 분뇨가 옷에 묻지 않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하이힐’의 원조라고 한다. 챙 넓은 모자도 창 밖 투척에 대비해 옷과 머리를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다. 수세식 화장실을 개발하고 하수도 체계를 정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250년 전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