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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단일화'보다 '보수 단일화'가 중요하다

양병택 2025. 5. 6. 08:28

 

 

보수 쪽 후보들 한 팀 돼야 해  안철수·홍준표·한동훈 표 빼고  한덕수·김문수 표 제 갈 길 가면   왜 단일화한다고 헛수고하나

탄핵 전문 '진짜 여당' 견제할 때  한 가지 제안은 단일화·이원화  한 사람은 국가 정체성 지키고   또 한 명은 국정 책임지면 어떤가

 
 
 
 
 

한 지인(知人)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최종 결정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A씨가 최종 후보로 선정되면 자신은 이번 대선 투표장에 나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면 차라리 투표권을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그에겐 보수 표의 집결이나 정권의 유지보다 특정인의 선택이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김문수씨를 최종 후보로 선정한 국민의힘은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 작업에 착수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의 단일화 의지가 중요하다. 문제는 후보는 단일화한다 해도 이 두 사람의 지지층인 보수·우파도 단일화할 수 있느냐다.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요구하려면 단일화도 깨끗해야 한다. 대표 주자가 된 사람을 중심으로 보수 쪽 후보들이 한 팀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후보 경선에서 졌으니까·단일화에서 양보한 사람이니까… 라면서 손 털고 뒤로 물러나 남의 일처럼 여기면, 보수는 필패다. 대선 투표에서 안철수 표 빠지고 홍준표 표 빠지고 한동훈 표 빠지고 마지막 남은 두 대선 주자 한덕수와 김문수 표도 제 갈 길 가면 남은 것은 오로지 이재명 표뿐이다. 단일화한다고 헛수고할 의미도 이유도 없다. 이런 식의 뺄셈(나 아니면 안 되고 너 되면 안 하겠다) 정치로는 마치 잘 훈련된 군대와도 같은 ‘좌파 전사(戰士)‘들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억압 시대에도 한국 유권자는 항상 야당을 지켜줬다. 한국의 민주 세력이 강압 정치로부터 정권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유도한 것도 국민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국민은 기본적으로 약자를 도와주는 전통을 갖고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사실상 강자는 야당이고 민주당이며, 국민의힘은 실질적으로 야당이다. 우리 국민이 지금 보살피고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를 밀어 넘어뜨리려는 무소불위 탄핵 전문 ‘진짜 여당’을 견제하는 일이다. 국회 의석의 거의 3분의 2에 대통령 자리까지 차지하면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는 단지 보수만의 걱정이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이제까지 한 발언과 노선의 결을 보면 그는 김대중, 노무현과도 다르고 심지어 문재인보다 훨씬 좌 쪽으로 경도돼 있다. 그는 87 체제 이후 가장 분명하고 뚜렷한 좌파 지도자임을 견지하고 있다. 보수 유권자들로서는 단순히 ‘나와는 다른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고 갈지 알 수 없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표가 모자라서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보수가 분열해서 졌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으면 한다. 보수 국민에게는 ‘이재명이 아닌 대통령’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번 6·3 대선은 어떤 개인 간 싸움이 아닌 좌우의 싸움이고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싸움이다.\

시사 평자들은 보수 후보자들에게 ‘정책이 안 보인다’,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 ‘방향 제시가 없다’는 등의 주문을 하면서 민주당 쪽에는 그런 의견을 묻고 미래의 방향 못 박기를 요구하는 것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측이 과거 보수·우파 성향 인사들을 끌어모으면 융통성, 유연성, 포괄성을 언급하면서, 우파가 좌파를 끌어들이려고 하면 배신을 언급한다.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하는 중요한 국제적 현상이 있다.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MAGA·매가)식 정책, 관세 무역 전쟁에 굴복하기보다 현상을 잘 알고 그것을 지키려는 정당들이 선거에서 속속 승리하고 있다. 지난주에 치른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총선에서 ‘트럼프 변화’에 방어적·보수적으로 대처하려는 정당들이 이겼다. 그런 움직임은 싱가포르에서, 그리고 영국·독일 등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래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대미(對美) 비판적인 좌파 정당보다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현 실정을 잘 아는 정부가 필요하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후보가 형식은 단일화하되 실질적으로는 이원화(二元化)해서 두 사람의 장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통령제이되 내각책임제 같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한 사람은 국가를 대표해서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고 다른 한 사람은 국정을 책임지는 기능을 분담하는 방식이다. 이것을 국민 앞에 공약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정 책임의 혼선을 일으키는 단점도 있겠지만 운영하기 나름, 또는 각자의 인품 능력에 따라 능력을 결합하고 더 나아가 보수를 통합하는 순기능일 수 있다. ‘나 아니면 안 된다’ ‘대통령 아니면 안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보수의 대의(大義)다.

 

2025년 5월 6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