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다. 스승 세 사람을 적어보란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결핍 실패 상심’을 썼다. 이름 대신 보통명사를 적은 나의 답에 놀라 모두 나만 쳐다본다. 먼저 답해 보라는 무언의 사인이다.
“정호승 시인이 말했죠. 아쉬워야 영혼이 눈을 뜨고 숨을 쉰다고요. 부족해야 지혜가 눈을 뜨고 마음이 진실해진다고. 진정한 결핍이 곧 삶의 원동력이 된다 했어요. 저는 ‘결핍의 은혜’라 부르기로 했어요. 배부른 돼지는 결핍을 몰라요. 하늘을 쳐다볼 이유나 필요도 없죠.”
이어지는 질문 하나. “목사님도 눈물의 빵을 드셔본 일이 있나요.” “괴테가 이 말을 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괴테도 몰랐던 게 있었어요. 그 눈물 젖은 빵조차 없는 빈손의 인생이죠. 심지어 곰팡이 핀 빵을 먹고 데굴데굴 구르며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저는 여전히 ‘배부른 돼지예요. 사치스럽죠. 한국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짐으로써 ‘가난을 도둑맞았다’고 말하는데, 저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파요.”
“그렇다면 ‘실패의 스승’은 무슨 뜻이죠?” “저는 다이슨 제품을 주저 없이 삽니다. 이유는 딱 하나예요. 가전계의 스티브 잡스라 불리는 다이슨이 말했어요. ‘5126번의 실패가 나를 만들었다.’ 그는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하기 위해 무려 5년간 집 마당에서 프로토타입을 5127개나 만들었다고 해요. 5126개는 실패였단 얘기잖아요. 이 수치만 생각하면 전 아직도 멀었죠.”
“누군가 말했어요. 성공은 지위를 키우지만 실패는 사람을 키운다고요. 저는 지위보다 사람으로 크고 싶어요. 이래서 저는 그것을 ‘실패의 선물’이라 해요. 저의 스승 중 스승이죠.” “놀랍네요. 계속해 주세요. 세 번째 스승 말입니다.”
“이만수 야구 감독, 다들 아시죠? 저의 소중한 친구예요. 그가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좌우명이 있어요. ‘지금의 아픔과 마음의 상처들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의 별이 된다.’ 그 말이 오늘의 ‘이만수’라는 브랜드를 만든 동력이었죠. 히브리 격언 중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쓰신다’는 말이 있어요. ‘상심의 기쁨’이죠. 저는 포도송이처럼 더 부서지고 으깨져야 할 사람이고요. 저는 이 셋을 이렇게 부르기로 했어요. 상처를 치유로 바꾼 ‘닥터(Dr) 상심’, 좌절을 단련으로 이끈 ‘캡틴(Capt) 실패’, 그리고 결핍을 갈망과 비전의 엔진으로 삼게 한 ‘미스터(Mr) 결핍’. 일종의 애칭이죠.”
그러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번개처럼 찾아든 세 귀빈이 있었다. 김용기 장기려 김경래. 세 분은 가난한 농민, 병든 이웃, 소외된 약자의 벗이었고 시대를 일깨운 선각자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기독교를 믿은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삶으로 증명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교회 장로로서 직분보다 교회 밖에서 더 크고 깊은 선한 영향력을 남겼다. 땅을 나누고 몸을 고치고 혼을 불살랐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인 이웃 사랑으로 실천한 영적 거인들이었다. 세 분은 나에게 ‘내가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답이 되어 준 분들이었다. 나는 뜻밖에도 이 세 분과 크고 작은 인연들로 이어져 있다.
김용기 장로님과는 가나안농군학교 수강생으로 시작해 외래 강사로 서기까지 긴 시간 이어졌다. 이른 아침 산책길, ‘돌도 게으르면 안 된다’며 누워있는 돌을 죄다 일으켜 세우신 장로님은 내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장기려 박사님은 고신대학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간호대학과 의과대학 교목을 지내면서 학교 현장과 성경공부 모임, 고신의료원 옥탑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람은 돈만큼이 아니라 아픈 만큼 치료받아야 한다’는 정신은 내 사역의 ‘혼(魂)’이 되었다. 학창 시절, 학생신앙운동(SFC) 위원장을 맡으며 김경래 장로님의 경향신문 편집국장실과 경향연구소장실을 드나들었다. 생애 마지막 과업이 된 K-바이블과 기독교문화체험관 프로젝트까지 반세기 가깝게 이어진 만남은 긍정과 유머, 창의성의 DNA가 돼주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세 분이 바로 Mr 결핍, Dr 상심, Capt 실패의 실존 인물들이었던 것을. 하나님의 은혜이고 기쁨이고 선물이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생가를 둘러보고 묘지를 찾고 얼굴을 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