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너무하십니다…
국회는 법안 찍어내는 인쇄기 됐고, 사법부 이미 허리 꺾고 無力化해 '절대 권력' 체제 '維新 대통령' 이후 가장 두려운 權力 출현 예고 黨의 영토 TK에 갇히고 人的 자원마저 궁핍한 김문수 후보
反轉 기회 잡을 수 있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보다 우선하면 국민이 편안하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뒷전으로 돌리고 자기 ‘하고 싶은 일’에만 매달리면 나라가 혼란스럽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를 뒤집는 대통령은 ‘해선 안 될 일’의 유혹에 쉽게 무릎을 꿇는다. 그런 대통령일수록 자기 주위를 ‘아니요’라고 대답해야 할 때 ‘예’ 하는 인물로 둘러싼다. 정권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가 겪는 혼란의 뿌리가 다르지 않다.
오는 6월 3일은 최고(最高) 최적(最適) 후보를 뽑는 날이 아니다. 그런 욕심을 부릴만한 밥상이 아니다. 가장 위험한 후보, ‘해야 할 일’을 뒷전에 밀쳐놓고 ‘하고 싶은 일’에 골몰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인물을 가려내기만 해도 성공이다. 원래 권력 자체는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다. 옳은 방향으로 쓰면 선한 힘이고, 나쁜 방향으로 휘두르면 악한 권력이 된다. 그러나 견제할 방법이 없는 절대 권력은 다르다.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그 끝이 비참하고, 나라를 위기로 내몬다.
선거운동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포장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욕심을 감추는 기간이다. 5년 임기 내내 적폐(積弊) 청산이란 정치 보복으로 일관한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엔 착한 양(羊)이었다. ‘나를 지지한 국민만이 아니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껴안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를 읽을 때도 그걸 믿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 식전(式典) 단상에서 손을 붙들고 호소하려던 천안함 희생 장병 어머니를 뿌리치던 모습과 서리보다 서늘한 눈초리를 여전히 생생하게 떠올리는 국민이 있다. 사법부를 뒤집어 대법원장까지 구속하던 그 시절 가장 잘 듣던 ‘문재인의 칼’이 윤석열 검사였다.
이재명 후보는 선거운동 시작 훨씬 전부터 오늘까지 선두를 내준 적이 없다. ‘당선 유력(有力)’이라는 40% 후반 지지율에서 ‘당선 확실’이라는 50% 전반을 밟았다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와는 두 자릿수 가까운 격차다. 이준석 후보는 그보다 한참 밑 10%에 턱걸이하고 있다.
형편이 넉넉해져 긴장이 느슨해진 것일까. 한동안 중도층의 표정도 살피고 기업 사정에도 귀를 여는 듯싶던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6월 3일은 ‘응징의 시간’이라고 했다. 자신의 정책에 대한 이견(異見)은 무식 탓이라 하고, ‘극단적(極端的)’이란 딱지를 상대 이마에 붙인다. ‘하고 싶은 말’은 본색(本色)을 드러낸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은 변한 게 없다.
김문수 후보는 딱하다.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당한 대통령의 당(黨)이란 멍에를 벗기가 쉽지 않다. 당의 영토와 인적 자원이 TK로 좁아진 터라 충청과 PK 지역엔 내세울 지원 연사(演士)조차 마땅치 않다. 윤석열·김건희 부부는 탈당(脫黨) 문제부터 영화 시사회 출동(出動), 디올 백에 이은 샤넬 백 소동으로 김 후보에게 구정물을 튀긴다. 남은 동력(動力)은 절대 권력 이재명 후보에 대해 중도층과 당을 떠난 옛 지지층이 갖는 공포감이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이준석 후보와 단일화를 거론하지만 대선 이후를 보는 이 후보 계산법은 크게 다른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유신(維新)’ 이후 가장 두려운 권력이 될 것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걸 법(法)으로 만들 수 있다. 국회는 이미 법을 찍어내는 인쇄기가 됐다. 사법부도 허리를 꺾어놨다. 자위(自衛) 수단이 없는 대법원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용해 대법관 30명 체제를 만들겠다는데도 속수무책이다. 1심과 2심은 전문 법관이 맡고 최종심은 법관이 아닌 사람들을 섞어 구성한 대법원이 맡는 체제다.
미국 국회의사당에 있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동상 받침대 오른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문안(文案)은 포드 대통령 시절 하원 의장으로 민주당을 이끌고 번번이 발목을 잡은 팁 오닐이 썼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남북전쟁 때는 에이브러햄 링컨을 내려 주시고, 워터게이트 혼란 중엔 제럴드 포드를 보내주셨습니다. 꼭 필요한 때(the right time) 딱 맞는 인물(the right man)을 골라 나라를 다시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박근혜 탄핵 땐 문재인을 보내시고 윤석열 탄핵 땐 이재명을 보내신 하느님께 감사 말씀을 올릴 수 있을까. 혹시 ‘하느님 너무하십니다’로 시작하는 원망(怨望)의 편지를 띄우게 되지는 않을까.
‘셰셰(謝謝) 외교’의 성능을 시험이나 하듯 태평양 건너 날아든 미국의 주한 미군 감축 구상이 심란(心亂)한 마음을 더 심란하게 흔든다.
2025년 5월 24일 조선일보 강석천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