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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과학 대통령

양병택 2025. 6. 3. 14:43
 

지금부터 60년 전인 1965년, 미국의 린든 존슨 대통령은 한국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보상으로 선물을 하나 약속했다. 당시 박정희의 측근들은 미국 측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토론을 했다. 큰 종합병원을 지어달라는 의견, 한강에 다리를 놓아 달라는 의견 등 당시 상황에서 시급하게 필요로 했던 기반 시설을 요구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지만 박정희는 최종적으로 과학기술 종합 연구소를 선택했다. 우리나라가 공업화를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필수적이라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1966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탄생했다. KIST와 여기서 파생된 전문 연구소들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와 1980년대 이후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박정희는 유난히 KIST에 애정을 쏟았다. 본인이 KIST의 설립자가 되었고, 홍릉 근교의 부지 확보가 어려웠을 때도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연구소 신축 현장도 종종 방문했고, 공사가 지연되자 공병대를 투입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건물이 완공되고 연구소가 본격 가동된 뒤에도 가끔 방문해서 연구원들과 차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당시 이런 일들은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과학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지금 세상은 60년 전에 비해서 훨씬 더 복잡하다. 대통령이 신경 쓸 일도 10배, 100배 더 늘어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기술 혁신 역량의 고취가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는 점은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소를 하나 짓는다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1세기형 과학 대통령은 어떤 사람일까?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최우선으로 삼고, 기초과학과 원천 연구의 중요성을 간파해서 이를 과감히 지원하고,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대비하는 공공 연구에 투자하는 국정 철학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이번에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21세기 과학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을 사람이길 바란다.

 

2025년 6월 3일 조선일보 홍성욱의 과학 오디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