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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日親中 벗어나야 성공한 대통령 된다"

양병택 2025. 6. 5. 08:57

일본 배제하고 중국에 머리 숙인  문재인 정권 실패에서 교훈을  '견고한 한미일 협력' 공약 지키면  안정적인 대외 관계 길 열릴 것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 21대 대통령 선거는 여러 면에서 이례적이었다. 전임자가 어리석은 자폭(自爆) 계엄으로 그토록 미워하던 정적(政敵)에게 대통령직을 헌납한 것은 두고두고 역사에 오르내릴 것이다. 국제 정치 전문가들은 선거 과정에서 외교·안보 이슈가 논쟁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동안 민주당이 대체로 수세에 몰렸던 대북 정책과 한미 동맹 관련 논란을 이번 대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기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 북한 김정은이 ‘두 국가 체제’를 공식화하며 통일 포기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에서 문재인 캠프처럼 ‘한반도 신경제 공동체’ 같은 이념적 구호를 앞세우기 어려웠다. 이 대통령 주변 전대협 운동권 세력의 약화로 친북 이미지가 가라앉았고, 이상주의적 정책을 말하는 이가 줄었다.

 

이재명 후보 캠프에 국가안보실장에 임명된 위성락 의원, 조현 전 외교부 1차관을 비롯한 고위급 외교관 출신이 대거 포진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였다. 이들은 캠프에서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 부위원장, 간사로 포진해 전략 수립에 깊숙이 관여했다.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고 “이 후보가 반일친중(反日親中) 이미지를 벗지 않으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며 현실주의 외교로 전환하기를 거듭 조언했다. ‘일본은 한국인이 매년 1000만명 이상 찾는 우호 국가지만, 중국은 서해를 자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는 위협적 존재’라는 일반 국민의 인식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캠프 안에서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대선 기간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발언은 과거와 비교해 정제된 모습이었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 문제에 대해 과거처럼 “태평양 연안 국가에 대한 전쟁 선포”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는 대중 유화(宥和)적 발언을 다시 강조한 것은 유감이었다. 대만 유사시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려 할 때 그 답을 생각해 보겠다”는 답변도 가벼운 인식을 드러낸 측면이 있다.

 

8년 전, ‘박근혜 파면’ 덕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자 지우기에 올인하며 좌파 진영 내 ‘반일친중’의 이념적 관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한일 위안부 합의를 들쑤셔 사실상 파기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미국이 지지해 온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선언하며 안보 협력까지 흔들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쪽으로 기울면서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는 와해 위기를 맞았다.

 

한일 갈등이 심화되던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기대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굴욕적인 장면들이었다. 2017년 국빈 방문 당시 한중 정상회담은 형식적이었고, ‘혼밥 외교’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동행한 한국 기자들이 중국 경호원에게 폭행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참여, 한미일 군사 동맹을 모두 하지 않는 사드 3불(三不) 정책은 ‘저자세 외교’의 표본으로 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신뢰를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대북 굴종 외교 논란이 겹쳐 문재인 정권은 국정 운영 동력을 잃고 말았다.

 

4일 취임한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권을 반면교사 삼아 대선 기간 내내 강조한 안정적 외교 노선을 유지한다면, 민주당 대표 시절의 외교 안보 관련 논란은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사의 “굳건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언급대로만 한다면, 이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이 걱정할 일은 없다. 이 대통령이 과거의 감정적 수사나 이념적 편향에서 벗어나 외교·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모든 국민이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

2025년 6월 5일 조선일보  이하원 기자

이하원 
조선일보 한나라당 취재반장, 외교안보팀장과 워싱턴·도쿄 특파원, 국제부장,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TV조선에서 정치부장 겸 '뉴스 9 (메인뉴스)' '이하원의 시사Q', 앵커로 활동했습니다. 저서 <레이와 시대 일본탐험><사무라이와 양키의 퀀텀점프> <시진핑과 오바마> <세계를 알려면 워싱턴을 읽어라> <조용한 열정, 반기문(공저)> <남북한과 미국, 변화하는 3각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