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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원자로의 핵심 연료… AI 시대 주목받는 '핼리우'

양병택 2025. 6. 14. 10:16
 
현대건설과 미국 홀텍사가 개발 중인 소형모듈원전(SMR) 모델의 조감도 /현대건설

온라인 결제 회사 페이팔을 공동 창업하고 페이스북·스페이스X· 오픈AI에도 투자해 큰 성공을 거둔 피터 틸 팔란티어 회장이 ‘우라늄 농축’ 사업에 뛰어든다. 실리콘밸리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꼽는 틸은 자신의 벤처캐피털 회사 ‘파운더스펀드’를 통해 우라늄 기술 기업 ‘제너럴 매터’의 5000만달러(약 670억원) 투자 유치에 주요 투자자로 최근 참여했다. 제너럴 매터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AI 시대 에너지원의 필수 연료로 주목받는 우라늄에 주목한 스타트업이다.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High-Assay Low-Enriched Uranium)’의 대량 생산을 목표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개발 중이다. 틸은 이 회사 이사회에도 들어간다. 자신이 유망하다고 지목한 기업의 경영에도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 아이오와 국립연구소에서 만들어낸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 금속괴. 고농축 우라늄의 농도를 낮춰 재가공했다. /미국 에너지부

◇실리콘밸리 억만장자가 ‘찜’한 핵연료

HALEU는 핵분열성 동위원소인 우라늄-235(U-235)의 농도가 5~20%인 핵연료다. 기존 대형 원전에서 사용하는 저농축 우라늄(LEU)의 U-235 농축도가 3~5%인 점을 감안하면, HALEU가 동일한 양의 연료로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사용 후 발생하는 핵폐기물 양도 상대적으로 적어 차세대 원자로의 핵심 연료로 주목받고 있다.

틸의 이번 투자는 최근 ‘원전 르네상스’를 선언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서명한 행정명령에 따르면, 미국은 원전 산업 활성화를 위해 신규 대형 원자로 10기를 2030년까지 건설하고,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현재의 4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AI 시대를 맞아 폭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저(低)탄소 에너지원이 원전이라고 본 것이다.

피터 틸 팔란티어 회장.

원전 중에서 특히 소형 모듈 원자로(SMR)가 기대를 모은다. 기존 대형 원전보다 건설 기간이 짧고, 설치·유지 비용이 적게 들어서다. SMR의 연료로 쓰이는 핼리우(HALEU)를 대량 생산해 공급하겠다는 스타트업이 ‘제너럴 매터’다. 이 회사의 중장기 목표는 미국 내 HALEU 소비량의 3분의 2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재작년 미국 원전이 사용한 우라늄 연료 중 미국산은 5%에 불과했다. 나머지 95%는 캐나다와 호주, 러시아, 카자흐스탄 같은 외국에서 수입했다. 특히 HALEU의 경우엔 대부분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최근 미국에서 HALEU를 대량 생산한 적은 없었다. 재작년 미국 기업 센트러스가 HALEU 20㎏을 생산한 것이 70년 만의 사례로 기록됐을 정도로 미국 내 생산은 거의 맥이 끊긴 상태다.

그래픽=백형선
그래픽=백형선

◇우라늄 농축도 낮추는 기술이 핵심

HALEU를 만들려면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용 고농축 우라늄(HEU)의 우라늄 농축도를 낮춰야 한다. 우라늄-235 농도가 20% 이상인 HEU를 농도 5~20%로 바꿀 수 있는 이른바 ‘다운 블렌딩’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연구용 원자로나 해체한 핵무기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모은 뒤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제 과정을 거치고 다른 금속을 섞어 농축도를 낮춰야 한다. 이를 통해 연료봉으로 가공해 SMR 등 차세대 원전용 연료로 쓰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농축도를 낮추는 시설들을 미국이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 HALEU는 저농축 우라늄보다도 우라늄-235 농축 비율이 높은 만큼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구에 걸맞은 보안과 운송·저장·처리 시설을 갖춰야 한다.

제너럴 매터는 2030년까지 HALEU 농축 시설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미국 전체 수요의 3분의 2를 책임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수십억 달러의 추가 투자가 필요할 전망이다.

그래픽=백형선

◇유럽도 뒤늦게 “HALEU 생산 확대”

미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 등 유럽도 HALEU 생산 시설을 늘리기 위해 나섰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안정해진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한 자구책이다. 예전처럼 러시아에 의존해선 안정적으로 우라늄 원료를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HALEU 생산 허브 구축 계획’을 통해 세계에서 둘째로 큰 우라늄 농축 기업이자 영국·네덜란드·독일 컨소시엄인 우렌코에 1억9600만파운드(약 3340억 원)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앞으로 2030년까지 5억파운드를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프랑스도 우라늄 연료 공급 강화를 위해 우라늄 농축 시설 용량을 2030년까지 15~30%가량 확장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HALEU 생산에 대해 원전 업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와 맞먹는 AI 인프라 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피터 틸도 미국이 AI 시대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면 핵연료 HALEU를 비롯해 에너지 패권 다툼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 등은 “틸이 제너럴 매터에 투자하는 것도 HALEU가 앞으로 떠오르는 차세대 우라늄 연료가 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

우라늄-235(U-235)의 농축도가 5~20%인 핵연료. 저농축 우라늄(U-235 농축도 3~5%·LEU)과 고농축 우라늄(농축도 20% 이상·HEU)의 중간 농축도다. 고농축 우라늄에 비해 핵무기 전용 위험성은 낮고, 저농축 우라늄보다는 에너지 효율이 높아 SMR(소형 모듈 원자로)을 비롯해 차세대 원자로에 적합한 원료로 주목받고 있다.   

2025년 6월 12일 조선일보 송혜진기자

차세대 원자로의 핵심 연료… AI 시대 주목받는 '핼리우'

美·英·佛… 생산 시설 확대 나서

입력 2025.06.12. 00:36업데이트 2025.06.12.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