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름 이야기
봉화산 47곳, 옥녀봉 39곳, 매봉산 32곳… 같은 산 이름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월간山’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산 이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이를테면 “설악산, 관악산, 치악산처럼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은 정말 ‘악’ 소리 나게 산행이 힘들어서 생긴 이름이냐?” “전국에 ‘봉화산’ ‘매봉산’ ‘옥녀봉’ ‘비로봉’ 등 같은 이름이 많은데 어떤 이유가 있나?” 같은 질문입니다.

‘악산’부터 답해보겠습니다. 산 이름엔 대부분 ‘큰 산 악(嶽·岳)’ 자를 씁니다. 그 지역의 가장 큰 산을 뜻하지요. 옛날에는 ‘신라 오악(五岳)’, ‘경기 오악’처럼 다섯 개의 명산을 손꼽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름에 ‘악’ 자가 들어가는 산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세가 크고 화려하거나,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이거나 영험한 산을 뜻합니다. 물론 ‘산이 크다’는 의미는 지역마다 상대적입니다. 산 높이가 1000m에 못 미치더라도 그 지역에서는 ‘큰 산’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는 아니지만 ‘악’ 자가 들어가면 산행이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산림청은 2007년 우리나라 산에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 순위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1위는 봉화산으로 47곳이었고, 이어서 국사봉(43곳), 옥녀봉(39곳), 매봉산(32곳), 남산(31곳) 순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이름인 봉화산은 정상에 봉화대가 설치된 것에서 유래합니다. 조선 시대엔 외적의 침입같이 나라의 급한 일이 생기면 봉화를 피워서 전했습니다. 때문에 전국에 봉화산이라는 이름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국사봉은 국사(國師), 국사(國士), 국사(國思) 등 다양한 한자를 씁니다. 여러 가지 유래가 있지만 마을이나 나라에서 제사를 지낸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또 유서 깊은 절이 있는 경우 나라의 스승[國士]이 될 정도로 훌륭한 승려를 배출했다는 의미로도 붙여졌으며, ‘생각 사(思)‘자를 써서 이곳에 올라 나라를 생각[國思]했다는 유래도 전해집니다.
옥녀봉(玉女峰)은 어떨까요? ‘옥녀’는 과거에 미인을 뜻하는 대명사였는데요. 산이 절세미인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옥녀봉에는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근처에서 목욕을 하거나 놀았다는 전설도 여러 곳에서 전해지고 있어요.
매봉산은 매를 풀어 사냥을 한 곳이거나 매가 살았던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매 응(鷹)’ 자를 쓰는 응봉·응봉산도 대부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매가 사냥 도구이자 권위를 상징하는 특별한 짐승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관련된 산 이름도 많은 것입니다.
오대산과 소백산을 비롯한 많은 산에 비로봉(毘盧峰)이 있는데요.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부처 ‘비로나자불’을 줄인 것입니다. 비로나자불은 진리이자 온 우주를 상징하므로 ‘비로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봉우리는 그 산에서 가장 신성하고 중심이 되는 봉우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냥 보고 지나쳤던 산들도 이름의 유래를 알고 나면 그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겨진 산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2025년 6월 23일 조선일보 신준범 월간 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