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方式 대통령 되기' 이번이 마지막 돼야
대통령은 법(法)을 이기고 관례(慣例)를 허물고 목표를 달성했다. 일부 무리한 법 적용이 있었겠지만 기소되고 재판받던 모든 사건이 억지와 조작이라고 보긴 어렵다. 당선 직후 여론조사에서 ‘진행되던 재판은 계속 받아야 한다’는 쪽이 훨씬 많았던 것은 국민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성공하지 않으면 안 될 절박한 이유가 있는 대통령이다. 그는 당선과 취임 이후 여러 차례 자신을 실용주의자(實用主義者)라고 했다. 이 나라에 굵은 발자취를 남긴 대통령들은 모두 ‘실용’을 우선했던 대통령이었다. ‘조심스러운 진보’는 ‘신중한 보수’와 닮았다. 자기 사건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을 너무 많이 끌어들인 게 흠이지만 인사(人事)도 실용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느낌이다.
실용주의와 반대되는 말이 ‘설계(設計)주의’다. 집을 지어본 사람들은 완공된 집을 보고 나서 ‘이런 집을 지으려는 게 아니었는데…’라고 당황하며 실망한다고 한다. 책상 위에서 줄을 죽죽 그어 설계하는 것과 현실 속에서 집을 직접 시공(施工)하는 것은 다르다. 28회나 집값 잡는 정책을 발표하고 그때마다 집값을 끌어올렸던 문재인 시대 부동산 대책이 그 표본이다.
이 대통령이 기본으로 삼아야 할 정치 목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윤석열 대통령처럼 망하는 대통령’이 다시는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재명 대통령처럼 성공하려는 흉내꾼’의 출현을 방지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일부 야심가(野心家)는 이 대통령 흉내를 내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흥망(興亡)은 120명의 검사를 투입한 세계 최대(最大) 특검이 밝혀낼 것이므로 기다리면 된다. 오히려 이참에 국회가 정당 해산 신청권을 가져가 야당 존립 근거를 허물려는 민주당 내 야심가들을 경계해야 한다.
본인에겐 대통령이 되는 과정이 험난하게 느껴졌겠지만 나라 전체가 입은 상처는 더 크다. 헌법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는 뿌리째 뽑혔다. 어리석은 대통령은 스스로 무너졌으니 더 따질 게 없다. 그가 이 대통령만큼 영리했더라면 야당이 수십 개 탄핵안으로 국정을 마비시킨다 해도 비상계엄으로 자해(自害)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회는 다수(多數)와 다수결(多數決)이 때론 폭력이나 다름없다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 의회 내 절대다수를 확보한 세력은 민주당이 세운 이 전례(前例)를 방패처럼 이용할 것이다.
사법부의 울타리는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다. 법원은 선거법 위반 사건은 1년 내 대법원 판결까지 마쳐야 한다는 법률을 위배해 울타리를 제 손으로 넘어뜨렸다.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은 걸핏하면 검찰을 앞세워 손톱만큼 남은 신뢰조차 아예 바닥내고 말았다. 신뢰를 잃고 권위를 잃은 헌법기관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파제가 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여러 관례를 허물고 과거 어느 야당 대표도 누리지 못한 예외적 특별 대우를 받았다. 당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당헌(黨憲)도, 부정부패로 기소된 당직자는 자동적으로 직무가 정지된다는 당헌도 그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좋은 법보다 좋은 관례가 쌓여야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 대통령이 앞으로도 관례를 허문 그런 특별 대우를 기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성공 방식’은 ‘실패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 작용할 것이다.
이 대통령이 대단한 건 나쁜 평판(評判)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됐다는 데 있다. 쿠데타 주역을 제외하곤 대통령이 되기 전 그보다 평판이 나빴던 경우는 없었다. 이제 국제적 평판이란 다음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현대 국제정치학의 개척자 한스 모겐소는 ‘나라 사이 관계에선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평판이 실제 우리 모습보다 중요할 때가 많다’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배경에 ‘중국에 기운 인물’이라는 미국 내 평판도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 툭툭 던졌던 이런 말 저런 말에서 싹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밀어붙이기 협상 전략도 묻어 있겠지만, 오해는 털고 넘어가야 한다. 버럭하고 욱하는 것은 지금 국익(國益)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다.
2025년 7월 19일 조선일보 강천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