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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과학의 산실 KIST
    낙서장 2024. 6. 17. 09:59

    1965년 5월 미국존슨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대학건설을 제안했다.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로서는 공과대학보다 공업기술과 응용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이에1966년2월 한국과학 기술 연구소(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가 설립되었다. KIST 설립 출자금은 2000달러였다. 당시 80kg 한 가마니가 3000원 이 었으니 상상할 수 없는 액수였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던 한국에 대한 투자는 무모해 보였지만 훗날 가장 성공적인 베팅으로  기록된다. · KIST가 그간 창출한 가치는 600조원이 넘는다  .  
     
    초대연구소장에 최형섭박사가 임명되었다. 한국과학 기술 연구소는 경제개발을 촉진하고 산업발전을 선도하게될 대형 장기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는 산업기술연구소의 역할을 했다.

     

    연구 인력을 모으는 것도 편의 드라마였다. 초대 원장 최형섭은 미국을 돌며 한인 과학자들에게 호소했다. “가난한 조국은 당신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첫해인 196618명이 귀국한 1990년까지 영구 귀국한 과학자가 1000명이 넘는다.

     

    귀국 과학자들은 당시 국립대 교수 연봉의 3배를 받았지만 그것도 미국에 있을 때의 절반이 됐다. 개중엔 대통령보다 더 높은 보수를 받은 이들도 있었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이 그들의 급여 세서를 훌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시행하시오!"
     
    박정희 대통령은 해외에서 활동 하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대통령 보다 더 많은 급여를 제공하는등 파격적인 대우를 하였다.

     

    이들은 종합제철과 조선 반도체 등 중화학공업의 발전을 뒷바침할 과학기술을 연구개발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한국과학기연구소는 과학 한국의 산실이자 주역이었다.
     

    또안 박 대통령은 서울대 종합캠퍼스 조성을 국가적 프로젝트로 인식했다. 그시대는 ‘조국 근대화’의 시대였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근대국가의 또 다른 이름은 ‘지식 국가’다. 아는 게 힘이고 지식이 국력이라는 의미다. 이런 시기에  KIST설립이나 서울대 종합캠퍼스의 탄생은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에 버금가는 역사적 이정표로 평가받을 수 있다.

     

    KIST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초석을 쌓았다. 그 위를 달릴 포니자동치를 현대자동차가 만들도록 한 것도그것을 수출하기 위해 조선소를 현대중공업이 짓게 한 것도그 재료를 생산하기 위해 포항 제철소를 짓게 것도 모두 KIST 두뇌에서 나왔다
     
     
    내년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대학을 관악캠퍼스로 옮긴지 50주년이 된다. 내년인 2025년에 서울대학교는 관악캠퍼스에서 새출발한 지 반백 년을 맞는다. 박정희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대학인서울대 종합캠퍼스 안(案)에 본격 개입하여 ‘서울대 종합화 10개년 계획’으로 가시화시켰으며 그일환으로 캠퍼스를 관악으로 옮겨간지가 내년으로 50주년을 맞게 된다. 그런데 어디서도 이를 각별히 여기려는 조짐이 없어 아쉽다.

     

    2024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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