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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메이지 유신발상지탐방
    사진및 여행 2018. 12. 8. 18:34

                                 일본 메이지 유신발상지탐방

     

    조선일보에서 문화계획행사로 메이지 유신발상지 탐방 3박4일 여행계획이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참가하신청을 했다. 몇 년전부터 신당동 박정희가옥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박정희전대통령에 대해 많이 알고 싶었고 그와 관련하여 유신도 어떤것인지 궁금하고 있었다. 또한 안중근 홍보대사로 있기에 그분이 저격한 이또 히로부미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짜별 일정은 다음과 같다.

     

     

     

     

     

     

     

     

    첫날 인천국제공항에서 후크오카 공항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뻐스로 하기로 갔다. 죠슈번의 본거지였던 하기는 왕정복고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찬황국가사상이 태동한 명치유신 의 정신적 발상지입니다. 지금의 지도와 비교해 보면 150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메이지시대와 같은 모양이다. 도시외곽에 요시다 쇼인’이 세운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있습니다. 이 조그만 시골 학숙에서 종리대신등 명치유신의 주역은 물론, 이토 히로부미· 가쓰라다로 고로 등 조선 침탈의 주역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히 야마구치현에서는 메이지유신 후 지금까지 현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하여 모두 9명의 총리가 배출되었는데97대에 이르는 내각 중 9명의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가 조각한 내각은 모두 20대(20.6%) 에 이를 정도로 일본 근현대사를 좌지우지했습니다. 일본 전체 47개도부현(都,道,府,縣) 중 아직 총리를 배출 지 못한 곳이 20곳에 이를 정도로 총리를 배출하기가 쉽지 않은 일본에서, 인재풀이 가장 풍부한 도꾜도 (8영)를 제치고 야마구치현이 모두 총리를  배출한 저력은 이곳이 메이지유신의 발상지라는 역사 적 뿌리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기에는 요시다 쇼인이 인재들을 배출한 요시다 쇼카손주쿠가 있다.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은 1830년 8월 4일 조슈 번사 스기 유리노스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5살 때 야마가류 병학사범인 숙부의 양자가 되었다. 숙부 다마키 분노신(후의 쇼인의 양부)에 의해 병법을 배우고 1850년 병학연구를 위하여 규슈에 유학하였다. 이듬해 에도에 가서 사상가 사쿠마 쇼잔에게 서양 학문을 배우고, 매슈 C. 페리의 흑선 외교를 계기로 도쿠가와 막부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존왕양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외국 유학을 결심, 1854년 제자인 가네코 시게노스케(金子重之助)와 해외 밀항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투옥되었다. 숙부 분노신이 설립한 쇼카손주쿠를 인수하여 1857년 자택에서 쇼카손주쿠의 숙장(塾長)으로 취임하였다.

     

     

    요시다 쇼인은 기존의 교육자들과 달리 교육의 대상에 신분이나 남녀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이노우에 분타(후에 이노우에 가오루로 개명), 기도 다카요시,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등 존왕양이 지도자들을 배출하여 이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게 하였다.

     

    1858년, 존왕양이(尊王攘夷)를 주창하다 노중 수좌(막부의 고관) 마나베 아키카쓰(間部詮勝) 암살음모에 연루되어 안세이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고, 이듬해인 1859년 심문을 받다가 마나베 아키카쓰 암살 계획을 진술한 후 사형판결을 받고 음력 10월 27일에 참수되었다. 2006년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요시다 쇼인의 생가는  하급무사였으로 가난했으나 공부하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다카스키 신사 키        요시다쇼인          구사카겐즈이

     

     

     

     

                                           요시다 쇼인의 유언록

     

     

     

     

     

    이토 히로부미는 1841년 10월 16일 조슈 번 스오 국 구마게 군(지금의 야마구치현 히카리 시) 야마구치현에서 농민 출신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1~12세 때 동네 서당에서 글을 익혔고, 14세에 번의 무사들이 하는 일 중 잡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문자와 한학, 독서하는 것을 보고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는 이가 나타난다. 15세 되던 해에 임무를 띠고 파견된 번사들의 조수로 잔심부름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가 모시던 구루하라 료조가 이토 히로부미의 재능을 알아보고 요시다 쇼인을 찾아가 볼 것을 권고한다. 1857년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만나 그의 사상에 감화받고, 요시다가 운영하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 입학하여 수학하게 되었다. 이후 10대 후반까지 번의 하급 무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요시다 쇼인의 학당에서 수학하였고, 한편으로 기도 다카요시, 이노우에 가오루,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과 교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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