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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게 나라냐?
    스크랩된 좋은글들 2019. 11. 26. 07:44


             출신大 가리고 AI 교수 뽑으라니, 나라가 전방위 역주행

      

    카이스트가 지난 7월 인공지능(AI) 전공 교수 채용 때 후보자들 출신 대학과 지도교수 등을 가린 채 '블라인드 채용' 방식으로 선발했다고 한다. 학력 등 개인 신상 정보를 보지 말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침 때문이었다. 정부는 '공정한 채용'을 이유로 일반 공공기관은 물론 카이스트를 비롯한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과 연구소 등에도 적용토록 했다. 출신 대학과 지도교수에 따라 그 인재의 학문적 경력과 특성, 능력이 결정된다. 그 핵심 조건을 보지 말라니 무얼 갖고 뽑으란 건가. 선진국 주요 연구소와 대학들이 출신 학교는 물론 추천서, 연구 계획서 등 활용 가능한 모든 정보를 제출토록 해 최고의 인재를 뽑는 것과 거꾸로다. AI는 정치 아래에서는 숨도 쉴 수 없다. 한국은 정치가 AI 위에 앉아서 출신 대학, 지도교수도 모른 채 교수를 뽑으라고 지시한다. 해외토픽감 코미디가 따로 없다.

     

    서울대에선 AI 인재를 길러낼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내년 3월 개원 예정이나 아직도 교수 요원을 확보하지 못했다. 일률적 호봉제와 엄격한 겸직 제한 규제 때문에 기업이나 실리콘밸리 등에서 활약하는 AI 전문가들이 오려 하지 않는다. 서울공대 컴퓨터공학부는 37년 전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입학 정원이 15년째 55명으로 묶여 있어 AI 전공자를 더 뽑지 못하고 있다. 미국 MIT가 1조원대 기금을 조성해 AI 대학을 세우고 중국 바이두가 'AI 인재 10만명' 계획을 추진하는 등 전 세계가 인재 양성에 총력전인데 우리는 AI를 가르칠 교수도, 배울 학생도 제대로 못 뽑는 자승자박의 처지다.  

     

    낡은 규제가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일괄 적용되면서 전국의 연구 현장은 오후 6시만 되면 불이 꺼지는 텅 빈 장소로 바뀌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집중해도 세계의 경쟁자들을 이길까 말까인데 연구 개발자들이 더 일하고 싶어도 사실상 강제로 연구실에서 쫓겨나고 있다. '적폐 청산' 바람이 연구계에까지 불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국연구재단·과학창의재단 등 12개 과학 기관장이 임기 도중 쫓겨났고, 앞 정권에서 임명된 대학총장과 연구소 원장들은 대대적 감사에 시달렸다. 전임 대통령과 초등학교가 같다는 카이스트 총장은 과기부에 의해 고발당하고, 이명박 정부 때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예산 삭감과 함께 1년 내내 각종 조사와 감사에 시달렸다.

          

    과학 프로젝트도 적폐로 몰렸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과제였던 달 탐사 사업은 현 정부 들어 방치되다가 사업 파트너인 미 NASA (항공우주 국)에 의해 달 궤도선 계획이 백지화당하는 국제 망신을 당했다. 수소 생산용 차세대 원자로는 탈원전 정책으로 전면 중단될 위기다. 과학이 정치에 억눌리면서 한국의 '세계 최상위 1% 과학자 수' 순위는 2017년 15위에서 올해 19위로 떨어졌다. 한 해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의 4분의 1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통계도 있다. 나라가 전방위로 역주행이다.


                                 2019년 11월 25일  조선일보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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