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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가 앞발 비빈’ 선거, 분노를 멈춰선 안된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4. 9. 07:36

    친문 좌장은 보궐선거에 져도
    대선 승리엔 지장없다 했다
    국민 분노가 대수롭지 않다는 게
    본심일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4·7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권위 있게' 짚어낸 것이 선관위였다. 친여 편향 논란을 빚은 선관위가 ‘무능·위선·내로남불’ 문구를 못 쓰게 금지하자 왜 투표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그랬다. 유권자들은 정권의 무능과 위선과 내로남불에 화가 나 투표장에 나갔다. 쌓이고 쌓인 끝에 폭발한 분노가 문 정권으로 하여금 처음으로 국민앞에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 등 민주당 지도부가 8일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면서 고개를 숙였다./국회사진기자단

     

    고용 참사에도. 서민 경제 붕괴에도, 빈부 격차 확대에도 “정책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우기던 대통령이었다. 최악의 집값 급등 앞에서도 “부동산은 자신 있다”더니 선거가 다가오자 허리를 굽혔다. 그토록 오류 인정에 인색하던 문 대통령이 “분노와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며 사과했다. 4년간 거들떠보지도 않던 ‘서해의 날’ 행사며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이 정권 들어 처음으로 국민 대접 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했다.

     

    민주당 수뇌부는 더욱 납작 엎드렸다. 선대위원장은 “국민의 화가 풀릴 때까지 반성하겠다”며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했다. “부족했다” “염치없다”는 말이 쏟아지고 당 대표 대행은 “내로남불 자세 혁파”를 언급했다. “문재인 보유국” 운운하던 서울시장 후보는 어느 순간부터 대통령 얘기는 뻥긋도 않았다. 틈만 나면 ‘문비어천가’를 불러대던 사람들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부동산 정책이 잘못됐다는 말도 공공연히 했다. 교육부 장관은 1년 이상 깔아뭉개던 조국 전 장관 딸의 입학 취소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오만의 극치를 달리던 권력의 돌연한 변신에 보는 국민이 아연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반성 모드가 진정성 없는 전술적 후퇴 임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동산 실패를 반성한다더니 청와대 정책실장은 “(집값 급등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라며 실패를 인정하길 거부했다. 정책 수정을 공언했던 민주당은 정작 임대차3법의 수정 검토는 없다며 입장을 뒤집었다.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한다느니, 민주화 유공자 특혜법을 만든다느니 이념의 몽니를 부리는 습관도 도져 나왔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친문 좌장은 보궐선거에 지더라도 “내년 대선이 어려워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 분노가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에 이기겠다고 기를 쓰는 모습부터 반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들이 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해놓고는 기어코 이기겠다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성추문에 대한 반성은커녕 ‘생태탕·백바지·페라가모’를 들고 나와 네거티브 공세로 날밤 새웠다. 돈으로 표를 사는 매표(買票) 본능도 여전했다. 4차 재난지원금으로 20조원을 뿌리고, 교사·경찰·군인 상여금을 선거 일주일 전에 앞당겨 지급했다. 당선시켜주면 1인당 10만원씩 준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판세가 불리해지자 “중대 결심” 운운하며 판을 깰 듯 협박하는 일까지 벌였다. 반성과 사죄는 애당초 말뿐임을 자백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그 이중적 자세가 또다시 ‘조국 어록’을 소환해냈다. 11년 전 조국은 이명박 정권을 겨냥해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파리는 잘못을 비는 게 아니라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뿐이란 것이다. 선거 기간 중 온갖 죽는 소리를 다 한 여당의 ‘눈물 코스프레’가 바로 그 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 패배가 굳어지자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의석 93%를 장악한 서울시 의회는 내곡동 조사 특위를 추진하겠다 한다. 오세훈 당선인의 손발을 묶어 식물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언론 개혁 프레임도 들고 나왔다. 포털과 언론이 ‘생태탕’을 제대로 써주지 않아 선거에서 졌다고 한다. 김어준과 관제(官製) 방송으로도 모자라 비판 언론의 입까지 완전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무얼 반성하고 무얼 사죄한다는 건가.

     

    이제 선거는 끝났고 쇼도 막을 내렸다. 청와대와 여당은 “국민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국민이 든 회초리를 맞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무엇을 반성하고 어떻게 고친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았다. 무얼 잘못했는지조차 잘 모르는 듯하다. ‘무능·위선·내로남불’이 문제라고 선관위가 콕 집어 주었는데도 여전히 “부동산 부패” 운운하며 마이웨이를 고수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이 정권이 반성하는 시늉이라도 한 것은 국민이 화를 냈기 때문이다. 분노를 표출시켰기 때문에 겁을 내는 척이라도 했다. 그러나 ‘반성 쇼’에 넘어가는 순간 정권의 본색은 다시 기어 나올 것이다. 벌써 그런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진정성 없이 ‘앞발 비비는 파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11년 전의 조국이 가르쳐주었다. 그는 “우리는 이 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이다. 퍽~’이라고 썼다. 조국이 옳다. 위기만 모면할 생각으로 또다시 정치공학적 주판알을 굴리는 정권에서 분노의 채찍을 거둬들여선 안 된다.

     

    2021년 4월 9일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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