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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 좋은 생각잡지사 인터뷰
    저의소개 2016. 7. 2. 08:35

    2013년 7월경  낯모른 전화가 왔다. “양 선생님 이세요?” 그렇다고 하자 “저는 좋은 사람들이란 출판사에서 행복한 동행을 맡고 있는 기자입니다” 라며 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행복한 동행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이기에 글자도 다른 잡지에 비해 크고 노인들뿐만 아니라 일반독자에게도 유익한 내용이 많다고 했다.

     

    그 후 몇 차례 전화 후 내가 사는 청계천 고산자 교 쉼터에서 만났다.

     

    인터넷에서 나의 인터넷 부로그 기사를 보았고 내 브로그를 들어와 검색해 시시콜콜한 것 까지 이미 알고 있었고 인터뷰는 단지 확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인터뷰를 면접하는식으로 하고난후 사진 촬영을 했다. 그리고 9월호에 인터뷰한 내용을 실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물어 어느것을 어떻게 소개할까? 호기심이 있기도 했다.

     

    10월초  자원 봉사하는 날이라서 청계광장에 가서 일을 끝내고 근처  서점에 갔더니 '9월호 행복한 동행' 이 진열되어있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과장되어있었다. 꼭 수정될 내용도 일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기사 내용이 사진이 아닌 그림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을 사실그대로 나타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지만 그림은 작가의 생각을 전달하기위해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평판 좋은 잡지에 소개되었다는 영광도 있지만 나를 너무 과대 미화시켜 부끄러움 또한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마음한구석에서는 기자의 마음을 독자들도 공감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래내용은 '아름다운 동행'에 실린기사 내용입니다.

     




     

    “호기심이 워낙 많아요. 안 해본 분야라면 더욱 그렇죠.“

     

     

    양병택 님(1942년생)은 요즘 말로 도전 종결자다. 오래 다닌 직장에서 은퇴한 뒤 재능을 나누고자 2002년 KOICA(한국국제협력단) 해외 봉사에 자원해 2년간 스리랑카에서 컴퓨터를 가르쳤다. 그때부터 그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도전을 즐긴다. 2007년에는 네팔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130lm) 트랙킹에 문을 두드렸다. 주위 사람들 모두 “그 나이엔 못 오른다." “오버 한다”라며 만류했지만 끝내 성공했다.

     

    2009년엔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했다. “해내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국토 종주도 결심했죠? ”

     

    작년 2012년 봄, 그는 전국 지도를 구입해 해남 땅끝 마을에 서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직선을 그었다. 갈 수 있는 도로와 숙박 가능한 곳에 동그라미 쳤다. 걸어서 해남 땅끝 마을부터 광주, 순창, 진안, 무주, 문경, 제천, 평칭, 인제를 거쳐 통일전망대에 당도할 계획이었다. 혼자 하는 게 무리라 생각했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아무에게도 권하지 못했다. 한데 교회 지인이 우연찮게 소식을 듣고 따라 나섰다.

     

    5월 1일, 그는 봄 햇살을 맡으며 동행과 첫발을 뗐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그런데 순창에 닿을 때였다. ‘숙소를 찾았지만 공교롭게 지역 행사 때문에 모두 사전 예약 돼 있지 뭐예요. 잘 곳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교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염치 불고하고 목사님께 ‘재워 주십쇼!’ 했죠. 흔쾌히 받아 주어 무사히 잠을 청할 수 있었어요. 참 감사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다. 기필코 완주하겠다던 동행은 체력의 한계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처음 맘먹은 대로 다시 혼자 걸어야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를 걱정한 아내가 주말마다 내려와 함께 걸어 주었다. 도보 여행이 처음인 아내의 발은 날이 갈수록 물집과 상처로 가득했다

     

     

     

    무척 미안했지만 고맙단 말조차 못했다. 아내가 돌아가면 그는 혼자 걸었다. 외롭고 마음이 약해졌지만 그때마다 초심을 되새겼다.

     

    마침내 21일 만에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니, 옛 사우들이 응원하러 와 있었다. 그는 해냈다는 성취감보다 감사에 목이 댔다. “도와주신 분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어요. 새삼 알겠더라고요. 이 종주는 나 혼자한게 아니란 것을"

     

    사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9년 아내의 접이식 자전거로 경춘고속도로 개통 기념 자전거 대회(54Km)에 참가했다.

     

    “접이식 자전거 타고 온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접이식 자전거는 다른 자전거에 비해 몸체와 바퀴가 작아요. 이걸로 대회 나왔냐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경기 당일, 비가 내려 하프(27km)로 축소 진행됐다. 비 오는 거리를 달렸는데도 자전거는 별 문제 없었다.

     

    그는 용기를 더 냈다. 자전거 국토 종주를 계획한 것이다. 한데 자전거가 마음에 걸렸다. 지속 주행 운동용으로 픽시 자전거(Fixed Gear Bike)를 미리 샀기 때문이다.

     

    픽시 자전거는 기어가 하나밖에 없고, 페달과 바퀴가 붙어 있어 계속 페달을 밟아 줘야 움직인다. 브레이크가 없어 페달을 뒤로 돌려 뒷바퀴를 제동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또 살 순 없는 노릇이니 그대로 종주를 시작할 수밖에.

     

    2013년 4월, 자전거 종주를 시작했다. 코스는 인천 아라 뱃길 터미널에서 낙동강 을숙도까지. 그는 남들보다 애를 먹었다. ‘자전거 종주하는 사람들은 산악자전거를 타더군요. 제 자전거는 기어 변속이 되지 않아 오르막길 오를 때 너무 힘들었어요. 끌고 올라가기도 했죠.“

     

    자전거 바퀴에 펑크가 날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예비 바퀴와 펌프를 준비했지만, 막상 사고가 나자 바퀴를 뺄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펑크 난채로 달려 도움을 청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

     

    “걷기는 힘들고 오래 걸리지만 다리만 성하면 움직일 수 있어요. 자전거는 도보보다 힘은 덜 들어도 사고가 나면 더 위험하죠. 그래도 자전거를 타다 보면 그 매력에 빠져 손을 못놔요.”

     

    일주일 만에 드디어 종착지인 낙동강 을숙도 자전거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그가 자전거로 달린 거리는 총 799km.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한 거리(약 820km)와 비슷하단다. 인증서와 메달도 받았다.

     

    그는 도보·자전거 국토 종주와 마라톤을 하는 틈틈이 봉사 활동도 잊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청계 광장에서 외국인들을 안내하고, 청계천 문화관에서 역사 문화해설도 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줄 몰랐어요. 자전거도 걷는 것도 봉사도 다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끈기 있게 노력하니 되더군요. 『행복한 동행』 독자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내면 좋겠어요. 저 사람도 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야!’ 하고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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