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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하며 한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저의소개 2016. 11. 3. 19:31

                   감사하며 한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감사할것들이 많다. 제일기억에 감는 감사는 어려워 중학을 포기하고 그래도 앞으로 사회생활하려면 학교생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서울에 장학금으로 운영하는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학교를 가자며 형님이 나를 서울로 데리고 왔다. 고등학교입시원서를 접수하려면 중학교 졸업장이 필요한데 대책도 없이 올라왔다. 올라 오는날 버스안에서 동아일보 1958년 2월 8일자 신문을 봤다. 그신문에 중학교 모집마감을 했는데 60명모집에 한명도 없다는 기사가 있었다. 형님이 그것을 보고 그학교에 가서 졸업장을 만들었다. 그덕분에 고등학교를 3년 국비생으로 졸업했다. 둘째 감사는 실력도 별로인데  한전에 대졸공채로 들어간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기에 실력이 있을리 없다. 그래도 시험전날 일어원서로된 전자문제집을 봤던 것이 그대로 나왔다. 지금은 기억력이 별로이지만 그당시에는 한번맘먹고 본 것은 몇일갔는데 엊그제 본것이야 사진찍은 것처럼 그대로 써놓을수있었다. 세 번째감사는 해외봉사에 지원한 것이다. 운이 좋아 코익카 제일연장자로 되어 매스콤에 소개되고 청와대에가서 대통령과 같은 테이불에서 식사하는 영광이 있었으며 그바람에 연말특집에 나의 이야기가 20분간 방송되기도 했다.

     

    이러한 감사가 내 생활에 자원봉사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2002년부터 시직한 자원봉사가 미미하기는하지만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내주에는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최규하대통령 생가에 가보기로 했다. 호기심이 있고 즐겁다.

     

    몇일전 청계천에 봉사하고 오면서 시청에 들려 책을 빌렸다. 그책은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이나모리 가스오씨의 성공요체란 책을 번역출판한 것이다. 그책에는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내 머리 속에 다음과같은 내용이 공감되며 남아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본교세라 창립자이며 명예회장,세계적인 기업가이며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한 사람이라한다. 아래글은 그분의 말이다.    

    “우리 인간은 굉장히 훌륭한 지혜를 신으로부터 부여받았습니다. 훌륭한 두뇌를 구사해 근대 과학을 발전시켜 고도의 문명사회를 만들었습니. 지혜무기생물의 정점에 위치해구상의 모든 생물을 먹이로 삼아 번영을 이뤄왔습니다.

    그러나 동식물들은 자신의 생명을 바쳐 다른 생물을 돕고 있지만, 인간은 식물과 동물을 수탈하며 번영유지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정점에 위치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 인간은 훌륭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훌륭한 성 또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수탈하며 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성이나 양심을 시용하여 다른 생명에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모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니만큼 자신만을 위하지 말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며 살아야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는 입니다. 조금이라도 괜찮으니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도움이 되는삶의 방식이 인간으로서 중요하다고 거기에 인생을 살아가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첫 번째 목적은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자그마한 것이라도 괜찮으니 도움이 되는 것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이나모리 가즈오씨의 생각처럼 나도 모처럼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니만큼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며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생각되로 된다면 감사하며 봉사하며  살고 싶다.



    “옛 시절의 화려함만 떠올렸다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었겠죠.”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북쪽으로 40여km 떨어진 작은 공업도시 마콜라 사프가스칸다. 이곳에서 매일 아침 태극기를 게양하는 한 한국인이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봉사단원인 양병택(楊炳澤·63)씨. 지금까지 KOICA가 외국에 보낸 봉사단원 가운데 최고령자다.

     

    양씨가 스리랑카에 간 것은 2002년 11월. 한-스리랑카 국제협정에 따라 한국 정부가 지어준 한스기술직업훈련원에서 현지인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생도 많이 했어요. 무더운 날씨뿐 아니라 현지 문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그는 ‘예’ ‘아니요’를 구분하는 것부터 헷갈렸다. 컴퓨터에 대한 기초개념을 열심히 설명한 뒤 이해하겠느냐고 묻자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드는 학생들의 반응에 설명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은 긍정을 뜻하는 몸동작이었다.

     

    건기(乾期)에 속하는 3월 날씨가 섭씨 30도를 웃도는 나라 스리랑카. KOICA가 봉사단원을 보내는 국가 중에서도 오지(奧地)에 속하는 데다 말라리아 콜레라 등 풍토병 때문에 젊은이들도 선뜻 나서지 않는 곳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양씨는 왜 이곳에 왔을까.

     

    “살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참 고마웠죠. 어떻게든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으로 꼽히는 한국전력에서 30여년간 일한 양씨는 98년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이 진행되자 ‘후배 직원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명예퇴직했다.

     

    “서울 청량리에 다일천사병원을 짓는다는 신문기사를 봤어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병원이었는데 건축비가 모자란다는 내용이었죠.”

     

    그는 ‘천사회원’이라는 후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는 아내 정정희(鄭貞熙·60)씨와 두 아들, 큰며느리도 천사회원으로 끌어들였다. 양씨 등 수많은 천사회원의 후원에 힘입어 다일병원은 2002년 초 준공됐다. 양씨는 후원에 그치지 않고 직접 병원에서 봉사를 하겠다며 2002년 2월부터 봉사자 교육을 받았다.

     

    “그해 4월이었던 것 같아요. 스리랑카에서 컴퓨터 교육을 담당할 봉사단원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를 봤죠.”

     

    자식들은 아버지가 ‘늦바람’이 났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KOICA 스리랑카 소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이 들었다고 떨어뜨리지 말고 기회를 달라”며 남편을 후원했다. 그녀는 이미 삼성서울병원이 개원한 94년부터 어린이병동 소아학습실에서 백혈병 환자를 위한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었다.

     

    “가장이 직장을 잃었을 때는 조금 막막했어요. 하지만 직장 생활하면서 못해본 일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요즘은 토요일마다 ‘전화 데이트’를 해요. 매번 비슷한 말이 오고가죠. 남편은 ‘건강하게 잘 있다’며 집 사정을 묻고 저는 ‘집 걱정은 하지 말라’며 건강하라고 당부하죠.”(아내 정씨)

     

    지금까지 양씨가 배출한 학생은 40여명. 현지 고등학생과 전문대생, 취업준비생 등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열악한 교육여건. 훈련원의 컴퓨터는 96년 설립 당시 들여온 486급이다. 별다른 교재도 없다. 강의 내용을 적은 노트가 고작이다.

     

    “올해 1월 졸업한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어요. 설문 문항에 ‘왜 사는가’를 끼워 넣었죠. 예상치 못했는데 ‘부모에게 공경하고 나라에 헌신하기 위해’라는 대답이 무척 많았어요. 또래의 한국 젊은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해지더군요.”

     

    양씨는 11월 한국에 돌아온다. 귀국 뒤에는 다일병원에서 노숙자와 빈민을 돕는 호스피스로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건방진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현실에 충실한 자세라면 퇴직 이후의 삶도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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