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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 저격수, 밖에 나가 눈을 뜨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6. 29. 09:59
     
     
    정치판을 떠난 박영선은 편안해 보였다. 책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필했다고 했다. “반도체 인재 양성이 급한데 모두 의대로 몰려가 걱정”이라고 했다. 2024.1.12 /이태경 기자
     

    어떤 충격적 경험을 통해 한 사람의 세계관과 인식 체계가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이 있다. 민주당 4선 의원 출신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금 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고 있는 듯하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 뒤 미 하버드대 유학을 떠났던 그는 지난봄 귀국해 ‘반도체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 책을 두 권이나 내고 강연과 인터뷰를 다니면서 반도체·AI에 국가적 사활을 걸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 당연한 주장이 눈길 끄는 것은 그의 과거 이력 때문이다. 그는 ‘재벌 저격수’로 통하던 강성 정치인이었다. 2004년 정계 입문 이후 일관되게 대기업 공격의 선봉에 서며 재벌 개혁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았다. 재벌의 지배구조와 편법 승계, 특혜 시스템이 경제 망치는 주범이라 비판하면서 민주당 재벌개혁특위 위원장을 맡고 각종 규제 법안을 주도했다.

     

    그는 한국 사회를 “재벌의 노예”라고 규정했다. “권력이 재벌로 다 넘어갔다”며 정경 유착을 못 끊으면 “남미형 국가로 추락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공격은 특히 삼성에 집중됐다. ‘삼성 저격수’를 자처하면서 삼성을 핀셋으로 찍은 금산(金産) 분리 강화법, ‘이재용법’으로 불린 불법이익 환수법 등을 추진했다. 삼성이 “재벌 위의 재벌이 됐다”며 ‘삼성 공화국’을 깨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영선은 “재벌 개혁이 경제를 선진화한다”는 논리를 폈다. 순환 출자로 엮인 계열 구조와 오너 1인 체제를 지적하는 그의 비판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야를 밖으로 돌려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핀트가 맞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공격한 재벌 시스템이 ‘남미형 추락’은커녕 반도체·휴대폰·배터리 신화와 자동차·조선의 기적을 낳은 사실을 그는 설명하지 못했다. 재벌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백사장에 조선소 짓는 도전도, 일본과 맞짱 뜨는 반도체 투자도 불가능했음을 그는 간과했다. 정치 이력이 쌓여갈수록 박영선의 ‘반재벌’은 기업 전체를 적으로 모는 ‘반기업’으로 흘렀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원샷법’을 “금수저 특혜법”이란 황당한 이유로 막아설 지경이었다.

     

    박영선뿐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그랬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대기업 적대 정당으로 변질된 민주당의 기업관을 상징하는 인물이 박영선이었다. 노무현 정권을 “삼성에 포획됐다”고 비난한 강경파가 정책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민주당은 갈수록 반기업 색채를 더해갔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대기업을 “기득권”으로 규정한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중대재해처벌법, 주 52시간제 등 기업 발목 잡는 겹겹의 규제로 제도화됐다. 기업과 노동을 대립 개념으로 보는 반기업·친노동 기조는 지금의 거대 민주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2017년 대선 때 “재벌 해체”를 언급했었다.

     

    민주당이 반기업을 외치는 동안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에 나가 처절한 생존 전쟁을 벌였다. 박영선이 서울 구로을에서 재선에 성공할 무렵, 삼성과 하이닉스는 두 차례의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독일과 일본 업체들을 차례로 궤멸시키며 메모리 패권을 거머쥐었다. 디스플레이는 2004년, 이차전지는 2010년 세계 1위에 올랐고, 현대차는 글로벌 톱5에 진입했다. 과감한 선제 투자와 초고속 의사 결정으로 경쟁자를 압도한 덕이었다. 세계 언론은 “한국형 경영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 무렵 회자됐던 유행어가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말이었다. 무엇이 2류와 4류를 갈랐는지 이유는 자명했다. 기업들은 세계를 무대로 전(全) 지구적 경쟁을 벌이지만, 정치인은 우물 안 개구리로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이념과 정파로 갈려 내부 싸움에 날 새느라 동네 건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2019년 박영선이 문재인 정부의 중소벤처부 장관에 기용되면서 그의 입에선 재벌 개혁이란 말이 잦아들었다. 현장을 보자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초 미국 유학을 떠난 뒤엔 미래 전도사로 180도 ‘전향’했다. 일부에선 윤석열 정부의 총리 자리를 노린 ‘우클릭 코스프레’로 폄하하지만 나는 박영선이 진심일 것이라 믿는다. 격변의 글로벌 세상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생각이 안 바뀔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박영선의 저격 대상은 재벌에서 정치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보니 한국 정치는 진짜 가장 낙후된 분야 같다”거나 “기업 경쟁력 높이기를 고민해야 할 정치권마저 우물 안 싸움만 하고 있다”고 했다. 20년간 자신도 그 일부였던 ‘우물 안 정치’를 나라 망치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문제는 정치”라는 그의 메시지는 자기 경험에서 우러난 체험적 통찰일 것이다. 천하의 ‘싸움닭’ 박영선도 밖에 나가 4류를 탈출했는데, 한국 정치는 여전히 4류의 감옥에 갇혀있다. 나라 밖에 정답이 널려 있는데 밖을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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