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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마고지 문화답사
    종교문화 2016. 5. 20. 07:20

                 한전 전우회 운영위원 백마고지 탐방


    어제 한전퇴직자모임단체인 전우회에서 상반기행사로 백마고지를 찾았다. 퇴직한지 10여년이 훨씬 넘고보니 같이 근무했던 분들도 이제는 많이들 연로하셨고 저세상에 가신분들도 있다. 그러기에 있을 때 서로 서로 사랑하고 정담을나누며 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라.  그전에 백마고지 답사를  다녀온일 있기는 하지만 옛 동료회원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기위해 참가했다. 출발지인 잠실운동장앞에 도착하니 관광뻐스5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늘 참석자들은 200여명이 되는듯했다. 

     

    그곳에 갔더니  백마고지가 있는 강원도 한전간부가 나와 영접해주었다. 어느 회사도 다같겠지만 우리한전은 국가의 중추산업인 전력공급을 주업무로 하고 있어 국가경제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고 개인적으로는 애사심이 강하고 자긍심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퇴직하는 분들은 자발적으로 전우회 참여한다.


    어제 백마고지를 방문하여 회원들간에 정을 나누며 우리나라 전적지를 살펴보고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느꼈다. 백마고지 전투(白馬高地戰鬪)는 한국 전쟁 당시인 1952년 10월 6일 ~ 10월 15일까지 한국군과 미군이 중공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인테넷으로 백마고지전투를 검색해 당시의 상황을 보니 그당시 제9보병사단은 춘천 및 홍천 전투에서 북한군 전차 부대를 물리쳤던 김종오 소장의 지휘 하에 1952년 9월 중순부터 철의 삼각 지대를 이루는 강원도 철원에 투입되어 395 고지를 기점으로 우측 중강리까지 11km에 이르는 철원 평야를 방어하고 있었다.

     

    이때 제9보병사단 정면으로 포진한 중공군 제38군 예하 113, 114 보병사단의 예비 부대로 제112보병사단이 후방에 대기 중이었다.

     

    이를 간파한 김종오 소장은 1952년 9월 22일 좌측 전방의 395 고지에 임익순 대령의 제30보병연대, 우측 전방에는 김봉철 대령의 제29보병연대를 전개시키고 이주일 대령의 제28보병연대를 예비 부대로 하여 유사시 양 연대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또한 유사시를 대비해 전부일 대령의 제51보병연대를 대대 단위로 분산시켜 평야 일대에 위치한 취약한 주저항선 방어를 강화하였다.

     

     

     

    10월 6일 저녁 중국인민지원군 대장 장융후이는 제38군단의 6개 연대의 지원부대병력 등 총병력 4만 4056명과 각종포 55문의 지원을 받으며, 일제히 봉래호의 제방을 폭파시켜 역곡천을 범람시킴으로써 국군을 기습 공격했다.

     

    이로 인해 제3대대가 증원 병력을 투입하는 데 차질을 빚어 중공군을 395 고지로 맹렬히 돌격해 제30보병연대 1대대장 김영선 소령의 휘하 군대로 3차례나 전투를 치뤄 중공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0월 7일 중공군은 다시 제4차 공세를 감행해 2개 대대로 1대의 전초 기지를 포위해 지속적으로 보병 돌격과 지원 포격을 감행해 395 고지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이에 이주일 대령의 제28보병연대가 투입되어 2시간의 걸친 전투 끝에 395 고지를 탈환했다.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10월 8일 중공군 제38군 예비 연대를 투입해 제5차 공세를 가해 오전 8시 다시 395 고지 정상을 점령했으나 최창용 중령의 제28보병연대 제3대대가 반격하여 23시에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불과 3일 동안 5차례에 걸친 공방전으로 중공군 제38군 113, 114보병사단의 피해가 심각했으나 제28보병연대는 물론 제30보병연대도 재편성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할 피해를 입어 김종오 소장은 제29보병연대의 투입을 검토한다.

     

    10월 9일 다시 중공군이 제6차 공세를 펼쳐 제30보병연대는 전력이 바닥나 3시간 만에 고지 정상과 우측 능성을 내주고 후퇴하지만 김봉철 대령의 제29보병연대가 투입되어 역습을 감행해 고지를 다시 탈환했다.

     

    그러자 중공군 제38군 사령부는 제112보병사단의 연대까지 동원해 10월 10일 대규모 인해 전술을 펼치고 제9보병사단의 잔병들도 참호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펼쳤다.

     

    이날 3차례의 함락과 탈환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중공군이 최종적으로 고지를 장악했으나 10월 11일 오전 이대철 소령의 제29보병연대 1대대가 김경진 소령의 2대대 병력을 증원받아 고지를 탈환시키는데 성공했으나 김경진 소령은 전투 과정에서 박격포탄을 맞아 전사했다.

     

    이후에도 전투는 4일 동안 계속되어 10월 15일 새벽 제28보병연대는 기습을 감행해 395 고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제29보병연대도 고지 북방의 전초 기지를 탈환해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내 이로써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 10일 동안 12차례의 공방전으로 백마 고지는 황폐화되었고 중공군은 1만 명, 국군은 3500명의 사상자를 냈다.

     

    백마고지 답사를 마치고 철원 노동당사(鐵原 勞動黨舍)를 탐방했다. 그곳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에 있는 건물이다.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22호다.  

     

    철원군은 북한의 통치 당시, 강원도의 도청이 소재했으며 구철원은 철원군의 중심지였다. 1946년 철원읍 관전리에 조선로동당에서 3층 당사를 건설했는데, 한국 전쟁을 거치며 구철원은 대한민국에 귀속되면서 노동당사도 대한민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쟁 때 폐허로 변한 탓에 이 건물도 현재 1층은 멀쩡 하지만 2층은 골조만 남아있다.

     

     

    그곳의 답사를 마치고 고석정으로 향했다. 고석정(孤石亭)은 철원읍 동송읍 장흥리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 진평왕 때 한탄강 중류에 세워진 정자이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의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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