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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아이와 내 아이를 함께 생각하여야 하는 이유
    더불어사는세상 2022. 9. 18. 19:01

     

    서양 사람에 비해 동양사람 그 중에서도 한국인만큼 우리라는 개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우리안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가족만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때 우리라는 말은 지극히 배타적인 의미를 갖는다.

     

    실생활에서도 우리를  나머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정을 베푸는 일에서조차 인색한 경향이 있다. 예로 쇼핑센터에서 아이들끼리 놀다가 부딪혀 같이 넘어져도 자기 아이만 일으켜 세워 데리고 가는 식이다.

     

    그런 부모 밑에 자란 아이가 자신만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단언컨대 그런 아이는 결코 리더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리더의 덕목은 자신이 아닌 남을 배려할 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자세는 어느날 갑자기 배워지는 게 아니다.

     

    어떤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밖에서 맞고 들어오면 그야말로 이성을 잃는다. 치료비를 물어줄망정 아이에게 너도 가서 한 대 때리고 오라고 한다. 아이를 진심으로 위하고 가르치려면, 먼저 씨움이 벌어졌는지 상황부터 파악하여 야단칠 부분과 보듬어줄 부분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그저 자기 자식이 남에게 맞았다는 사실에만 흥분해서 앞뒤 가리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많은 부모들이 오해하는 게 하나 있다. 자신이 아이의 편을 들지 않으면 아이의 기가 죽는다고 생각히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의 잘못에 대해 적절한 가치 판단이나 교정없이 감정적인 대응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자기 행동을 반성하고 바로잡을 기회를 잃게 된다. 올바른 판단을 배울 기회를 잃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들에 대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인정할 만한 덕목을 갖추지 못한 아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식의 기를 살리는 데만 급급한 부모는 사실 아이에게서 리더가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나를 넘어 어제와 내일을 잇연결 고리

    부모들은 우선 아이들에게 나 라는 개념을 나 자체로 한정짓지 않는 법을 가르쳐야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부모들이 예전에 비해 개인적이라는 데 있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부모와 이웃,  사회 속에서 보면 부모 자신의 개념도 굉장히 협소하다는 것을 수 있다.

     

    그러나 연장된 나나를 넘어선 나(beyond - self)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나로 나아감으로써 우리가 부모와 자손의 연결 고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개념은 아이를 키우는 데는 물론이고그 아이가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데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먼저 개념을 넓히고 그 시간적인 의미 또한 연장시킬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한국인에게 이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현재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는 나를 있게 한 조상의 자손이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의 부모다.

     

    서양에서 생각하는 개인주의적인 나즉  직선상의 한 점일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나.

     

    연장선상의 에게는 당연히 책임과 의무도 따른다. 그로 인한   즐거움과  안도감도  많지만일단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왜냐하면 를  연장시키는 순간 조상가깝게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의 아이를 넘어 의 후손을 생각하게 된다. 동양적 가치관으로는 에 가까운 친지와 이웃 내게 소중한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자식의 앞날도 모르는데 후손의 앞날까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맞다. 손주나  증 손주는  커녕 내 자식의 10뒤도 수 없는 것이 부모로서의 .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냐는 후손의 부모로서 나의 자식과 후손이 살아갈 사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부모로서 개념이 연장되어야 하는 이유이자아이들의 를 연장시켜야 하는 이유다. 넓게 아는 아이들에게 배려는 생활이 된다.

     

     

    남을 돕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한다.

     

    베푸는 것에 인색한 사람들도 있다. 어리숙한 짓이라며 남에게  베풀려고 하는 아이의 선한 마음조차 막는 부모들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사회가 잘 되어야 나와 우리 가족이 잘되는 것이라고 말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남의 아이를 키우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내 말에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다른 아이를 함께 키워야 내 아이가 잘 자란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다면 부모 먼저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이기적인 발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나와 남이 모두 잘되는 공동선즉 공동의 목표와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남을 도울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문제가 풀리기도 하는데이것을 히 네트워크 또는 지원(support) 시스템이라고 한다. 남을 돕는 과정에서 베푸는 아이 자신이 오히려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남을 배려하고 봉사한 결과가 부모나 아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경험을 시키자그러면 아이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바르고 훌륭하게 자라날 것이다.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해서 무언가 거창한 일을 계획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할 있는 선에서 하는 지원 봉사도 사회를 위한 훌륭한 노력이다.

     

    셋째아들 홍주가 예일대 법대생들과 함께 아이티 난민을 위해 소송을 걸었던 적이 있다. 남을 돕는 일이 결과적으로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좋은 예다. 홍주를 비롯하여 당시 정부에 맞서 말 그대로 목숨을 투쟁을 벌였던 많은 사람들이 노력 끝에 아이티 난민들을 구해냈다. 이로써 인종 차별을 말끔히 씻는 좋은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지만그 투쟁에 가담했던 사람의 앞길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홍주는 그 일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 널리 알려져이후 클린턴 정부의 인권 차관보로 일할 있게 되었다.

     

    다시 강조하지만남을 도우면서 가장 도움을 받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거듭 입증한 셈이다.

     

    부모가 남을 도우면서 기쁨을 찾고 그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한다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뜻의 중요성을 느끼고 변화할 것이다.

     

    아이들이 직접 봉사 활동을 할 거둘 있는 교육 효과상당하다.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아이은 일단 기쁨을 낀다. 자긍심도 갖게 된. 그런 뿌듯한 감정을 오래 그리고 자주 느끼려면 정말 보람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각오도 다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하게 된다. 이것은 부모의 강요로 공부하거나 자식의 공부를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것괴는 확실히 다른 방법이다.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면서 부모와 아이 모두가 행복해질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원 봉사가 힘들다면 기부도 좋은 방법이다. 유태인들은 으레 12말이 되면 가족이 둘러앉아 어떤 단체에 돈을 기부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비영리 단체인 동암문화연구소를 50년 넘게 이끌어오면서 느낀 가운데 하나는 미국 사람들에 비해 우리 한국 사람들은 봉사가 몸에 배어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한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국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동암문화연구소 사업에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미국인들이 오히려 더 열심이다.

     

    카톨릭 신자들은 기부금을 내거나 자원 봉사 활동을 하면서 교육 자선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반면 미국 내 한국계 미국인은 70% 이상이 개신교도들인데 가장 기부를 적게 하는 그룹으로 분류된다.

     

    자유와 평등의 혜택은 누리고자 하면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가능하게 만드는 봉사와 희생 정신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이익만 취하고 의무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만약 기부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과정에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기부를 결정하는 단계부터 아이에게 무엇이 좋은 가치인지 자연스럽게 고민하는 기회를 주어도 좋을 것이다. 아이는 그러는 사이에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리더로서의 자질을 배우게 된다.

     

    나의 손주들은 명절 때면 조그만 선물을 골라 할머니인 나에게 선물하한다. 한번은 초등학교 2학년인 손주가 이층으로 된 재미있는 찻잔을 선물했다. 위는 차를 넣어 우려낼 있는 뚜껑이 달린 주전자이고아래쪽은 찻잔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너무 고맙고 대견하여 어디에서 이런 션물을  구했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차를 즐기시는 것 같아 학교 바자회에서 이 찻잔을 샀다고 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그저 받기만 하고 자란 아이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도움 되는 것을 주고자 하는 아이와는 그 그릇의 크기가 디를 것이다. 이처럼 아이라도 선물 속에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 가를 배려히는 마음 씀씀이까지 담을 있도록 해야 한다.

     

    조금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아이만 바라볼 때는 절대로 얻을 없는 귀한 것을 얻게 된다. 남은 물론 부모 자신도 기쁨을 누리는 동시에 아이에게 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된다.

     

    자원 봉사나 기부 같은 공식적인 행동만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보통 때 부모가 남을 배려하는 행동도 교육적 효과가 크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 가로 평가 된다"

     

    이것은 나의 아버지가 강조한 가르침이자 남편이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말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이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했고아이들 역시 교훈으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실천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단지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바탕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스스로 찾고나중에 어떻게 세상을 위해 봉사할지 생각할 이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 속에서 사랑받는 지도자로서 말이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은 현재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펴낸 이러한 신념을 오히려 일방적으로 이용하려 한 어머니가 있었는가 하면 진정 이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어머니도 있었다. 어떤 어머니는 알지도 못하는 나에게 자기 아이를 맡아 지도해 달라고도 했고또 다른 어머니는 우리 동암문화연구소에서 아이와 함께 봉사하며 후배들을 기르는 힘을 쏟기도 했다. 이렇게 다른 어머니 가운데 어떤 어머니의 아이가 리더로 자랄 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듯하다.

     전혜성 교수가  출판한 '섬기는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 책에서 보고 베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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