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특혜·비리로 구속 기소된 김만배씨가 은수미 성남시장의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끼치려 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됐다. 김씨는 2020년 3월 녹취록에서 “조금 힘을 써서 (은 시장이) 당선 무효형이 아닐 정도로만 하면 된다”고 한다. 당시 은 시장은 2018년 성남시장 선거 전에 지역 조폭 출신 사업가에게 차량 편의를 제공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은 시장은 항소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만약 이대로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무렵 김씨는 성남 분당구 오리역 인근 부동산 사업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이 성사되려면 성남시의 인허가가 필요했다.
놀랍게도 은 시장의 대법원 재판은 김씨가 말한 그대로 됐다. 김씨는 녹취록에서 “(대법원이 은 시장의) 임기는 채워줄 거야”라고 한다. 은 시장 재판의 주심 대법관이 결정된 지 1주일 만에 김씨가 재판 결과를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 것이다. 넉 달 뒤 대법원은 은 시장에게 일부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무죄 이유가 황당했다. 대법원은 “검사가 항소 이유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했는데, 법원 내에서 “이례적 판결” “거의 보지 못한 일”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재판의 주심은 안철상 대법관으로 김명수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안 대법관은 김명수 대법원의 초대 법원행정처장과 이른바 ‘사법 농단’ 특별조사단장을 지냈다.
은 시장 재판과 관련한 김만배씨의 언행은 권순일 대법관을 통한 ‘재판 거래’ 의혹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은 시장이 대법원 판결을 받고 1주일 만에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도 선거법 위반 무죄 취지 판결을 받았다. 석 달 뒤 수원고법에서 이 후보는 무죄, 은 시장은 시장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벌금 90만원이 나란히 확정됐다. 앞서 대법원 판결이 두 사람에게 정치적 앞길을 터준 셈이다.
김만배씨는 두 사람의 대법원 재판을 전후해 8차례나 대법원을 드나들었다. 김씨는 “권 대법관은 3~4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다른 대법관도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 김씨가 대장동 개발에서 수천억 원의 특혜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이 후보에게 보은하려고 권 대법관에게 구명 로비를 했다는 ‘재판 거래’ 의혹은 억측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다.
김씨가 다른 부동산 사업의 인허가권을 가진 은 시장의 재판에도 유사한 의도, 유사한 방식으로 개입하려 했을 수 있다. 다른 재판도 아닌 대법원 재판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있다면 사법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국기 문란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아무 말이 없고 검찰과 경찰도 팔짱만 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