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의 5000~6000배 전략핵무기는 실제 쓰긴 어려워
핵보유국이 사용할 수 있는 핵무기는 소형 전술핵
美 전술핵 다시 들여오면 북핵 억지력 될 수 있어
저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강대국들이 보유한 핵무기의 엄청난 파괴력이 그들 사이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 유지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했다. 승자와 패자의 구별도 없고 전방과 후방의 구분도 없이 모두 함께 멸망하게 될 핵전쟁의 공포가 역설적으로 평화를 지켰다는 얘기다. 그건 사실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히로시마 원폭보다 훨씬 큰 핵탄두를 무려 5000개씩이나 보유하고 있지만 그건 전면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한 사용이 불가능한 창고 속의 무기일 뿐이다. 어느 쪽이건 선제 핵 공격을 하면 즉각 보복 공격을 받아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은 475kt 수소탄두 8개가 장착된 다탄두 트라이던트II 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다. 핵잠수함 1척에 이런 미사일이 24기가 탑재되는데, 전체 폭발력 합계가 히로시마 원폭의 5500배나 된다. 러시아 핵무기는 더 엄청나다. 벨고로드급 핵잠수함에 탑재된 초대형 핵어뢰 포세이돈은 탄두가 최대 100Mt이라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6200배에 해당한다. 해상에서 500미터 높이의 방사능 쓰나미를 일으켜 반경 1500km 이내의 모든 생명체를 초토화한다 해서 ‘지구 최후의 날(Doomsday)’ 핵무기라 불린다. 벨고로드급 핵잠수함에는 이런 핵어뢰가 6기나 탑재된다. 그러나 두 나라가 보유한 이런 가공할 전략핵무기들은 동반 자살을 각오하지 않는 한 아무도 먼저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전술핵무기다. 전략핵무기는 도시 단위 면적을 초토화하나, 전술핵무기는 히로시마 원폭보다 훨씬 작은 1kt 내외로서 전투 현장에서 반경 0.5~1km 정도를 초토화하는 용도이며, 방사능 확산도 제한적이다. 이는 미국이 냉전 시대에 소련 진영의 압도적 탱크 전력을 저지할 목적으로 개발해 서유럽과 한국에 배치했었고, 현재는 대부분 폐기되었다. 핵무기를 크게 만들기는 쉬워도 작게 만드는 건 고난도 기술이어서 현재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만 전술핵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패퇴하기 시작한 러시아가 궁여지책으로 핵 사용을 위협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핵전쟁 공포가 급부상하고 있다. 물론 러시아가 핵무기를 쓰더라도 전략핵이 아닌 전술핵에 국한되겠지만, 미국과 나토(NATO) 진영의 강력한 응징을 각오해야 할 상황이어서 선택이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유럽연합(EU)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떤 핵 공격이든 발생하면 러시아군은 군사적으로 전멸하게 될 것”이라 경고했고, 미국과 나토도 “심각한 후과”를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가 핵 사용을 강행할 경우, 나토의 강력한 재래식 무력 응징을 초래하게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2017년 제6차 핵실험에서 핵무기 소형화와 수소탄 실험에 성공한 북한은 향후 제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무기급 초소형 수소탄 실험을 실시할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 러시아, 이스라엘에 이어 전술핵무기 제조에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나, 만일 그것이 현실화한다면 한국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 북한의 전략핵무기는 자멸을 각오하지 않는 한 사용할 수 없는 쇼윈도 속의 무기일지 모르나, 전술핵무기는 경우에 따라 실제 사용될 수도 있는 직접적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전술핵을 사용하고도 국제사회의 강력한 응징을 받지 않는다면 북한은 전술핵 활용의 유혹을 강하게 느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전술핵 개발 움직임과 9월 ‘핵 선제 사용 법제화’ 발표에 자극받은 한국 정부는 미국 전술핵 재반입과 전략자산의 한국 상주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하나, 미국이 쉽사리 응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내 미군 기지는 대부분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장사정포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예민한 전략자산의 상주에 부적합하고, 전술핵무기 재반입은 다소 심리적 위안은 될지언정 100개 내외의 강력한 북한 전략핵무기에 대한 억지력이 될 수는 없다. 또한 유사시 미국 핵무기를 동맹국 전폭기가 대신 적국에 투발한다는 ‘핵공유’ 개념도 핵미사일 활용이 보편화된 현 시대의 전략 환경과는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핵보유국들이 실제 사용 가능한 핵무기는 현실적으로 소형 전술핵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미국 전술핵 재반입은 북한의 전술핵 사용 의지를 차단하는 중요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