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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돈 침대와 후쿠시마 오염수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7. 11. 07:20

     라돈 침대와 후쿠시마 오염수

    23
     
    04:39
     
    일러스트=박상훈

    후쿠시마 오염수를 둘러싼 논쟁은 5년 전 벌어진 라돈 침대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시판된 침대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한 방송사 보도로 시작된 이 사건은 2018년 5월부터 연말까지 침대 공포를 키우며 계속됐다. 적재장에서 쫓겨난 침대 수만 개는 침대 회사로 옮겨질 때도 해골 그려진 플래카드와 맞닥뜨렸다. 매트리스를 야외에 쌓아놓기만 해도 방사능에 피폭돼 사람은 물론 농산물까지 오염될 것이라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라돈 침대 사건은 여러 브랜드 침대 18만개가 수거·폐기되고 생산과 수입을 중단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후쿠시마 문제처럼 정치권이 들끓지도 않았고 침대 회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 사회는 안전해지고 더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검찰은 지난 2020년 1월 해당 침대 회사 대표를 불기소했다. 라돈 침대와 폐암 등 질병 사이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다고 했다. 라돈 침대가 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팔았다는 사기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침대 회사 대표와 가족도 오랫동안 라돈 침대를 쓰고 있었다. 침대 소비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도 법원은 작년 8월 침대 회사 손을 들어줬다. 회사는 이미 망한 뒤였다.

     

    라돈 침대는 기억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일본의 유명 라돈 온천에 다녀왔다는 여행기도 다시 등장했다. “세계적인 라돈 함유량을 자랑하는” 온천에 “몸을 담가도, 물을 마셔도, 증기를 흡입해도 건강에 좋다”고 한다. 욕조에 풀어 넣는 라돈 입욕제도 해외 직구로 팔린다. 도대체 라돈의 진실은 무엇인가.

     

    당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라돈 침대의 방사선량이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며칠 뒤 “침대 스펀지에서 나오는 방사선까지 고려하면 기준을 넘는다”고 조사 결과를 뒤집었다. 이후 침대 공포는 빠르게 확산됐다. 대통령은 침대를 빨리 거둬들이라고 재촉했다.

     

    탈원전 정권에서 라돈 침대는 설 땅이 없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20년 신문 기고에서 “침대 회사는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봤고 국민은 근거 없는 공포에 시달렸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과학을 믿지 않고 원자력에 대한 편견을 극대화하려는 소수의 정략적 판단이 이런 코미디를 낳았다”고 했다.

     

    라돈 침대 사건은 정치권 공방 대상이 아니었다. 정치인들이 주워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 업체가 연루된 문제이자 그 브랜드 침대를 쓰는 소비자들 문제였다. 후쿠시마 오염수는 다르다. 먹잇감 천지다. 일본이 엮인 문제이며 정부 외교의 문제, 수산물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전 국민의 문제다. 광우병 때와 똑같다. 과학 따위는 애초 귓등으로도 들을 생각이 없다. 상대방에게 흠집 낼 수 있을 때 공격할 뿐이다.

     

    이런 논쟁은 과학에 지독하게 불리하다. 한쪽 플래카드에 “핵 폐기수 너나 마셔라”라고 쓰여 있고 다른 쪽엔 “후쿠시마 오염수 피폭량은 X레이 1회 분량인 0.05mSv의 1000만분의 1″이라고 적혀 있다면 어느 쪽이 읽힐까. “오염수 방류로 우리 바다 삼중수소가 0.000001베크렐 추가될 뿐”이라는 말과 “우물물에 독극물 풀지 말라”는 말 중 어떤 게 귀에 쏙 들어오나.

    웨이드 앨리슨 옥스퍼드대 명예교수가 “정화된 후쿠시마 오염수는 당장 1리터라도 마실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의 언어로는 대중을 좀처럼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야당 대표가 대뜸 “돌팔이”라고 했다. 돌팔이의 언어를 독점해 온 쪽에서 상대를 돌팔이라고 규정했다. 앨리슨 교수는 한국 정치인의 싸움 기술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라돈이든 후쿠시마든 우리가 방사능에 대해 갖는 공포의 원천은 사실 핵무기다. 1945년 일본에 떨어진 핵폭탄과 그 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핵과 방사능, 원자력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키웠다. 그러나 이후 80년 가까이 핵무기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 사이 핵무기를 가장 많이 써먹은 곳은 다름 아닌 할리우드다. 얼마나 많은 영화 주인공이 핵폭탄 터지기 5초 전에 문제를 해결했던가. 그 핵무기가 바다 건널 것도 없이 지척 북한에 있다. 핵무기엔 찍 소리 못 하고 오염수에 길길이 뛰는 이 코미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머지않아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수입되고 오염수도 라돈 침대처럼 잊힐 것으로 확신한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과학적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정치인과 과학자 중 한쪽을 믿어야 할 때 서슴없이 과학자를 택할 뿐이다.

     

    20223년 7월 11일 조선이로 [한현우의 미세한 풍경] 라돈 침대와 후쿠시마 오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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