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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을 만든 이승만 대통령의 두 말뚝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7. 29. 05:55

    6·25전쟁 정전(停戰) 70주년을 기념하는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는 기본 조건인 자유(自由)를 지켜낸 기적을 기리는 것이다. 이 싸움에서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죽거나 다쳤다. 김일성 군대 22만 명은 스탈린이 준 탱크와 대포로 무장했다. 마오쩌둥은 중국 내전(內戰)에서 공산군과 한편이 돼 싸운 조선 출신을 딸려 보냈다. 당시 국군 병력은 9만8000명. 주말 외출을 나갔다가 긴급 파견된 주일(駐日) 미군은 소수에 불과했다. UN군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1950년 8월 4일 국군과 미군은 낙동강 남쪽으로 후퇴했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투 선두에 서서 낙동강 북부 방어선을 지켰다. 미국과 유럽 신문은 ‘부산은 한국의 됭케르크가 될 것인가’라고 보도했다. 됭케르크는 1940년 5월 히틀러 군대에 포위된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영국 본토로 탈출했던 프랑스 항구다. 영국군 34만은 탈출했고 프랑스군 4만은 포로가 됐다. 국군과 미군 포함, UN군은 인천을 ‘한국의 노르망디’로 만드는 대반격을 펼쳐 서울을 수복하고 김일성 군대를 38선 이북으로 밀어냈다.

     

    마오쩌둥이 이때 중공군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았다면 ‘분단(分斷) 70년’이란 단어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중국 군사과학원의 ‘중국군 한국전쟁사’는 중국군 전투 손실 36만4000명, 비전투원 손실 2만5000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투입 병력은 그 몇 배에 달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6·25의 시작·전개·종결 과정을 모르는 전후(戰後) 출생이어서 UN군 참전 용사와 정전을 기념하는 것은 뜻이 깊다.

     

    정전 70주년의 또 하나 의의(意義)는 그 후 대한민국과 북한이 앞으로 걸어갈 경로(經路)가 사실상 정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과 북한은 1945년 세계 민족 독립 물결 속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도 운명이 다르듯 남과 북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사주(四柱) 때문이 아니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다. 1인당 소득, 수출, 수입, 발전량 경제지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분단 당시 북한이 공업 지대를 차지하고 대한민국은 방직 공장 몇 개뿐이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첫 선택이 차이를 만들었다. 미국과 소련은 2차 대전에서 연합국으로 함께 싸웠다. 두 나라가 43년간 이어질 냉전(冷戰)을 시작하리라고 예상한 독립국가 지도자는 세계에 두 사람밖에 없었다. 세계 공산 혁명을 기획하던 소련 스탈린과 스탈린의 속을 들여다본 영국 총리 처칠이다. 1945년 3월 처칠의 ‘철의 장막(iron curtain)’ 연설은 그래서 역사에 남았다.

     

    루스벨트·트루먼 등 미국 대통령들도 긴가민가하면서 소련 심기(心氣)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이 상황에서 망명객으로 30년 동안 세계를 떠돌던 이승만은 세계 정세에 대한 확실한 전망(展望) 아래 대한민국 둥지를 서방(西方) 자본주의 자유 진영에 틀었다.

     

    이승만의 선택에 대한 좌파와 중간파의 비방(誹謗)과 중상(中傷)은 당시는 물론이고 70년간 계속됐다. 좌파는 의도를 갖고 있어서, 중간파는 세계 정세에 무지(無知)해서다. 6·25는 이승만이 읽은 대로 세계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자유주의와 전체주의 간 대결장이란 사실을 증명했다.

     

    이승만은 이 연장선상에서 대한민국을 북한·소련·중공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고 나라를 개방(開放)과 번영으로 이끌 두 번째 선택을 했다.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이승만이 박은 두 말뚝을 벗어나지 않고 지도자와 국민이 합심(合心)해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북한 노동당 당원은 특수 신분(身分)이다. 인구의 10%가량이다. 이들은 아침 7시 반이면 출근해 사무실에 걸린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혹시 먼지가 묻었나 깨끗이 닦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매일 ‘생활 총화’, 매월 ‘월간 총화’ 시간을 갖고 당 방침에 어긋난 생활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한다. 8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국가안전보위부원과 수십만 명에 달하는 그 정보요원들이 그들을 감시한다. 교회도 사찰도 없다. 민노총도 전교조도 없다. 정부 공격 신문도 없다. 소설다운 소설, 시다운 시를 쓰는 작가도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박은 두 말뚝은 ‘국가가 곧 감옥’인 이런 생지옥으로부터 5100만 한국 국민을 지켜온 기둥이다. 정전 70주년 기념일은 이런 ‘당연한 일’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한번 떠올려 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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