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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관련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철학은 ‘재다신약(財多身弱)’이다. 돈이 많으면 몸이 약해진다. 돈을 벌고 유지 관리하는 일은 너무 신경 쓸 일이 많다. 동학과 6·25 같은 사회 혼란기에는 돈 많은 사람이 타깃이 되었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500억원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수면제 먹고 있다. 소송이 서너 건씩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 퇴계로 쪽에 각각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필자와 식사를 할 때는 꼭 1만원짜리 설렁탕 집에 가서 먹는 사람도 보았다. ‘재수가 없다’는 느낌을 준다. 남들 보기에는 부러운 건물주이지만 삶의 퀄리티는 형편없다. 주변에 고급스러운 사람이 없고, 이해타산의 인간관계만 맺고 산다. 이런 사람이 몸이 아플 때는 주변에 돈을 풀면 호전되는 수가 있다. 업보(業報)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식신생재(食神生財)’도 있다. 베푼 것이 스리쿠션으로 돌아와 돈이 되는 수가 있다. 식신(食神)은 남에게 먹이기를 좋아하는 기질을 가리킨다. 잘 베푸는 스타일이다. 팔자에 이게 있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돈이 붙는다. 10명에게 베풀면 8명은 다 까먹어 버리고 1~2명이 잊지 않고 꼭 신세를 갚는데, 그때는 10배, 100배로 갚는 수가 있다. 식신 팔자는 위기를 겪을 때 전혀 예상 못 한 사람이 나타나 도움을 주기도 하고, 넘어져도 돈이 있는 쪽으로 넘어지는 경향이 있다. 외가, 친가를 막론하고 조부, 증조부 대에 인심이 후했던 집안의 후손들이 ‘식신생재’ 팔자를 타고난다. 윗대에 베풀어 놓은 것이 사라지지 않고 후손에게 유전이 된다. 그래서 혼사를 할 때는 상대방 집안의 윗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돈은 많지만 인색한 집안하고 혼사를 하면 자손이 별 볼일 없거나, 뭐 좀 될 만하면 뜬금없이 누가 등장하여 고춧가루 뿌리는 일이 발생한다.
조국도 조상들이 주변 공동체에 적선을 해 놓은 미담이 있었으면 대권 잡았을 수도 있다. 재벌가 자식들이 단명하거나 질병이 많은 이유는 재물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쌓인 원한이 발동된 것이라고 본다. 경주 최부잣집이 오래간 것도 ‘흉년에 논[田畓] 사지 말라’,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 천년의 왕도(王都)가 경주였고, 그 천년 왕도의 흔적이 없어지지 않고 최부잣집에 남았다고 본다. “돈이 뭡니까?” “道돈不二여!” 도(道)와 돈이 둘이 아니라는 수불(修弗) 선사의 한마디가 생각난다. 돈에는 도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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