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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의 오물 풍선에 대한 야당 당론이 궁금하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9. 27. 05:37

    수천 개 오물 풍선, 수개월 동안 내려보내는데  제1야당은 침묵, 조국당은 사실상 두둔 중.  오물풍선 잘못이지만, 전단살포도 잘못이라고?  USB·음식·달러가 든 우리 풍선과 어떻게 같나  민주당 입장은 무엇인가, 유권자로서 궁금하다

     
     
    일러스트=김현국

    쓰레기 풍선을 만드는 북한 노동자를 상상해 보았다. 비닐 조각에서 담배꽁초와 배설물 등 온갖 오물을 모아 풍선에 집어넣으며, 아무리 당의 명령이라지만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을까. 조국 해방 전쟁을 위한 대단한 무기도 아니고, 기껏해야 남한 사람들 불편하고 열 받게 할 ‘저강도 도발’용 소품이라니. 멋들어진 핵무기를 놔두고 이런 지저분한 물건을 만드는 스스로를 창피해할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북한의 칼럼니스트라면, 이런 비인간적이고 치졸한 발상에 주민을 동원하는 정부를 맹비난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북한에 살고 있지 않고, 불행한 일이지만 북한에는 그런 언론도 없다.

     

    그런데 그 풍선이 장난이 아니다. 휴대폰에 뜨는 ‘북한 쓰레기 풍선이 서울 상공에 진입하였으니 적재물 낙하에 주의하고 발견 시 군부대나 경찰에 신고 바람’이라는 안전 문자가 수시로 일상의 평화를 방해하는 건 물론, 급기야는 기폭 장치 추정 물체 때문에 화재가 나고 세계 5대 공항인 인천공항에서 여러 번 운항 중지 사태가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풍선은 제주도와 전라도 일부를 제외한 남한 전역으로 떠내려갔다. 8월 초까지 집계된 수도권 피해 규모는 1억원이 넘는다. 발표에 따르면 풍선 하나 제조하는 데 원가가 약 1만원, 전체를 쌀로 환산하면 약 970톤에 이르는 액수라고 한다. 북한의 대학교수 월급이 4500원이다.

     

    피해가 늘자 국회는 국민 피해를 정부가 복구할 수 있는 재난안전법 개정 절차에 들어갔고, 군은 ‘선을 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군사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군이 말한 ‘선’이란 인명을 뜻하지만, 사실 풍선은 이미 선(휴전선)을 넘었다.

    풍선을 만드는 노동자와 달리 북한 수뇌부는 남한 반응을 넷플릭스보다 재미있게 감상했으리라 상상이 된다. 풍선 수천 개를 수개월에 걸쳐 내려보내는 동안 대한민국의 야당이라는 곳에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침묵하는 건 물론이고, 조국당에서도 논평을 내고 “남한이 보낸 풍선은 인도적 행위며, 북한 풍선은 치졸하고 저급한 국제법 위반이라는 건 이중 잣대” 운운하며 김여정 편을 두둔했다. 그뿐인가. 야당 성향 논객이라는 사람들도 북한을 비난하며 동시에 윤석열 정부도 함께 비난해 주니, ‘남남 갈등’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저강도 도발로 맛보는 고강도 재미다.

     

    내친김에 북한은 ‘2국가론’이라는 또 다른 풍선을 띄워 보냈다. 이번에는 야권이 둘로 셋으로 나뉘어 분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통일하지 맙시다”라고 하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당장은 통일을 실현하기 어려우니 남북 간에 평화적인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자는 게 임 전 실장의 핵심 메시지”라며 친절한 해설을 붙여주었다. 2국가론에 찬성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통일을 후대로 넘기자”는 입장인데, 정세현 전 장관도 같은 입장이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김대중 대통령이라면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으나, 같은 당 조승래 의원은 “당이 정색하고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뒤로 물러섰다.

     

    민주당에서는 임 전 실장의 발언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행여 당론으로 비칠까 선을 긋는 모습이지만, 민주당에서 2국가론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무튼 선은 그었지만, 그렇다고 반대하거나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내지는 않았다. 여러 상황에 비추어 민주당의 입장은 2국가론과 오물 풍선 그 사이 어디쯤 있는 것 같다. 그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정체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2국가론에 동조하는 입장이라면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소위 ‘반국가 세력’에 가까울 것이다. 오물 풍선은 잘못이지만 남한의 전단 살포도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든 문재인 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고, 대북 강성 기조를 비판하며 점진적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김대중의 햇볕 정책 쪽에 가까울 것이다. 민주당 입장은 어디 위치하는지 알고 싶다. 향후 대한민국호(호)의 방향키를 쥘 수도 있는 제1 야당이기에, 유권자로서 나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임종석 전 실장의 ‘2국가론’은 그동안 별로 생각하지 않던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했다. 두 국가가 되면 이산가족은 외국인이 되고, 통일은 침략이 되며, 남한의 국토는 영원한 섬이 된다. 핵무기를 갖고 오물 풍선을 내려보내는 남의 나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대 세습의 전근대적 독재국가와 세계 10위권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친구는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북한에 동조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어졌다. 지금 당장 가족을 데리고 북한에 가서 살라고 한다면 가겠는가? 아무리 해방 언저리에 묶여 건국 논쟁을 수백 번 반복한다 한들, 우리가 북한처럼 살 수도, 살아서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이렇게 쉬운 문제에조차 답을 내놓지 못하는 야당은 이상하다.

     

    언제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될 것 같지도 않은 통일을, 그래도 지향하고 소망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더러운 풍선을 제조하며 비판조차 할 수 없는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을 나눠주기 위해서라도. 같은 민족이 아니라도 그게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에. USB와 음식과 달러가 담긴 남한의 풍선을 ‘보물’로 여기는 형제가 있는 한, 통일이라는 가치는 유효하다.

    조선일보 2024년 9월 27일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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