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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 우드로 윌슨 블레드소가 참가자들에게 얼굴 사진 100장을 제시하고, 같은 인물의 사진들을 가려내게 하는 실험을 했다. 가장 빨리 해낸 사람이 6시간 걸렸다. 컴퓨터는 같은 작업을 불과 3분 만에 끝냈다. 컴퓨터가 사람의 얼굴 초고속 인식에 처음으로 성공한 장면이었다.
▶블레드소가 얼굴 인식 프로그램 개발에 나선 것은 미 중앙정보국(CIA)이 위장회사를 통해 연구비를 대고 개발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2차원 평면의 ‘문자’ 인식도 어려운 당시에 3차원 ‘얼굴’ 인식은 상상 속에서나 머물던 기술이었다. 같은 사람의 얼굴 사진도 표정이며 헤어 스타일, 촬영 각도와 시점에 따라 천양지차다. 컴퓨터가 인식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블레드소는 사람 얼굴을 눈, 귀, 코, 눈썹, 입술 등 주요 부위 간의 위치 관계로 데이터화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한계를 돌파했다. 얼굴 각도가 바뀌어도 각각의 좌표를 비교 분석해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시작한 컴퓨터의 얼굴 인식은 법 집행기관의 사진 데이터베이스와 머그샷(피의자 인상착의 사진)의 동일 인물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 등으로 쓰이면서 사용 범위가 확대돼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컴퓨터의 얼굴 인식은 노화 정도, 조명의 강도, 모발의 길이 등 각종 변수로 오류가 잦아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인공지능(AI)의 딥러닝 기술이 꽃을 피우면서 수천만 장 이상 얼굴 사진을 학습해 장애물을 줄줄이 뛰어넘었다. 점, 속눈썹, 눈가의 잔주름까지 정교하게 분석하고, 수많은 군중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의 얼굴을 인식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공상과학영화의 얼굴 인식 기술들이 실현된 것이다. 안면 인식 기술력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중국은 범죄자나 간첩 색출, 심지어 탈북자 적발에도 이 방법을 사용하며 전 국토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국가정보원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북한군 추정 인물이 지난해 8월 김정은 위원장을 수행한 북한 미사일 기술자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북한 관영매체 사진과 우크라이나 정보기관이 제공한 현지 사진을 자체 AI 안면 인식 기술로 분석한 결과다. 그러나 안면 인식을 통한 대북 정보 수집엔 한계가 있다. 북한인 얼굴 사진을 관영 매체가 공개하는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방대한 한국인 사진 데이터를 갖고 있다. 지금도 북한의 AI가 한국 인터넷에 떠있는 수많은 인물 사진과 중국산 감시카메라로 유출된 사진들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중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2024년 10월 21 조선일보 곽수근 논설위원·테크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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