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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정지된 대통령 꼭 끌어내서 수사해야 하나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1. 9. 07:32
윤석열 대통령을 감쌀 생각은 깃털만큼도 없다. 해를 넘겨가며 이어지고 있는 국가적 혼란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적극 지지층의 생각은 다를지 모르지만 군(軍)을 동원해 국정을 정상화하려 했다는 대통령의 발상은 기본적으로 시대착오였다.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였다. 또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우리 헌법 및 법률이 정해 놓은 원칙과 어긋났다고 보인다.
계엄에 가담했던 군 수뇌부들이 ‘셀프 구명’ 차원에서 쏟아내는 증언을 다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막기 위해 내렸다는 명령들이 일정 부분 사실이라면 자칫 끔찍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대통령이 “계엄을 몇 차례 더 할 수 있다”고 했다는 대목은 추가 사태에 대한 걱정을 낳게 했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통령의 직무를 조속히 중단시켜야 한다”는 야당과 한동훈 당시 국민의 힘 대표의 주장에 상당수 국민이 동의했다. 계엄 불발 열흘 남짓 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유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출범으로 한숨 돌렸다고 믿었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곳으로 튄 작은 불씨가 심상치 않은 불길로 번져가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집행하겠다는 공수처·경찰 연합과 이를 막아내겠다는 대통령 경호처의 대치가 물리적 충돌을 낳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1차 집행이 무산된 후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공수처장을 다그친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경호처 직원들이 총을 가지고 덤빈다? 불상사 위험이 있다? 가슴을 열고 쏘라고 해라. 그런 결기를 가져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이 경찰에 끌려 나오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쌓여온 분풀이를 하겠다는 결의로 충만했다. 공수처장은 몇차례 걸쳐 “꼭 유념하겠다”고 다짐했다. 목숨을 걸고 대통령을 지키는 훈련을 받아온 경호처와 살상이 벌어지는 현장에 대비해 온 경찰 특공대가 현장에서 육탄전을 벌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대통령이 “수사에 당당히 임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자기 발로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것이 순리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고, 법원이 발부한 체포 영장에 이런 저런 문제점이 있다는 대통령 측 주장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대통령이 정당한 수사에는 응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이렇게 극단적인 충돌을 무릅써야 하느냐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현직 대통령이 형사 소추되는 것은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극히 이례적인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탄핵이 인용돼 파면된 후부터 수사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재직 중 유일하게 형사상 소추를 받는 대상으로 헌법이 적시한 두 가지 죄중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래서 계엄 사태 직후부터 수사기관들이 대통령 사냥에 경쟁적으로 뛰어 들었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차기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를 상정한 공적 다툼으로 비쳤다. 대통령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어제까지 자신이 지휘하던 수사기관에 끌려가는 장면을 당장 수용하기 힘든 대통령의 심리 상태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대통령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이 끝내 수사를 안 받겠다고 버티면 대통령에 불리하게 쏟아낸 군 관계자들의 증언들을 다 인정한 꼴이 된다.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대통령도 머지않아 수사에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게 된다. 또 헌재가 대통령을 파면하면 더 이상 경호처 뒤로 숨을 수도 없다.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가 벗겨진 것이니만큼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당장 멈춰야 한다. 나라의 체면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이 수사를 안 받겠다고 경호처를 앞세워 숨고, 그런 대통령을 끌어내고야 말겠다고 공권력이 진입하는 모습은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치겠는가.
탄핵소추안 통과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은 ‘우리 속에 갇힌 맹수’ 신세다. 국민 삶에 영향을 미칠 아무 힘이 없다. 그런 대통령을 꼭 물리적 힘으로 끌어내 수사받게 해야 하나. 그래야 민주당 사람들과 그 지지층의 속이 시원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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