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논설위원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이 기각되면서 거대 야당이 주도한 고위 공직자 탄핵 시도가 9전 9패를 기록했다. 현 정부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 30건 중 헌법재판소가 선고한 9건 모두 기각 결정이 났다.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탄핵 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직무가 정지된다. 9명의 직무 정지 기간이 평균 5개월이니 무리한 탄핵 남발로 국정 공백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제 한 총리를 복귀시킨 헌법재판관 8명이 윤석열 대통령은 어찌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 탄핵은 성공할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은 변론 종결 후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일 만에 결론이 났는데 윤 대통령은 한 달이 지나도록 선고일도 못 잡고 있다. 탄핵 심판이 법적 절차이자 정치적 절차임을 감안하면 탄핵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노 전 대통령 땐 탄핵 반대 여론(71%)이 압도적이었고,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찬성(77%)이 압도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 찬성 58%, 반대 36% 구도가 두 달간 이어지고 있다(한국갤럽). 탄핵 찬성 비율이 높지만 압도적이진 않다.
앞서 두 차례 대통령 탄핵 때와 달리 보수 성향의 헌법학자들을 중심으로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은 점도 부담일 것이다. 권위 있는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와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주심을 맡았던 강일원 변호사도 우려를 표하고 있어 흘려듣기 어렵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비상대권을 ‘경고용’으로 휘두른 무모한 사람에게 어떻게 대통령 자리를 계속 맡길까 싶다. 국회에 무장 군인이 들어가는 걸 생방송으로 봤고, 체포조 얘기도 여럿한테 들었으니 더 따져볼 것도 없다 싶은데 보수 헌법학자들 생각은 다르다.
대통령과 국회가 주고받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계엄선포권과 해제 요구권 행사)에 사법부의 개입은 신중해야 하고, 탄핵 사유에서 핵심인 내란죄 부분을 철회한 것은 심각한 하자이며, 국회 무력화와 정치인 체포 지시 같은 사실관계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 두 대통령과 달리 내란 혐의 수사도 받고 있다. 형사 법정에선 쓸 수 없는 증거들을 탄핵 심판에서는 채택했는데 단심제인 탄핵 결정이 난 후 형사 재판에서 다른 결론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 헌재가 신문한 증인은 16명이지만 내란죄 형사 재판에선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520명이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기 한 달 전 이철희 정치평론가가 두 전직 대통령 탄핵의 성패를 가른 요인을 분석한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냈다. 노 전 대통령 때는 국회가 민심에 역행해 탄핵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의회 쿠데타’로 받아들여져 실패한 반면,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무르익은 민심의 요구를 국회가 수용하는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1기 때인 2017년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러시아 대선 개입 의혹에 트럼프 대통령 탄핵 요구가 거세던 시기로 이 칼럼은 탄핵 주도 세력의 절제와 신중함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셌지만, 거국 중립내각 구성 등 다른 ‘위엄 있는 퇴로’를 먼저 제안하다 탄핵을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혼란을 끝내고 질서를 회복할 정치 세력이라는 신뢰까지 얻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거의 다 된 것 같던 윤 대통령 탄핵 절차가 막판에 느려진 이유도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확정 판결 전 조기 대선을 치르려고 서두른 탓이 크다. 헌법상 탄핵안 의결은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야 가능하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 전 헌법과 법률 위반 여부를 따져보는 절차는 없었다. 1차 탄핵 때는 언론 기사 7건, 2차 땐 63건을 참고 자료로 첨부했을 뿐이다.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 때는 상원에서 사실조사 하는 데 1년, 하원에서 소추 사유 확인하는 데 6개월 걸렸다고 한다. 국회가 제 역할을 했더라면 헌재에서 ‘요원’이냐 ‘인원’이냐 같은 사실관계 따지느라 귀한 시간 허비하는 일도, 광장에서 찬탄 반탄으로 갈라져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탄핵은 국회의 탄핵 소추, 헌재의 심판, 여론의 승복으로 완성된다. 첫 번째 단계의 과오를 만회할 두 단계의 기회가 남아 있다. 헌재는 ‘신속하되 공정한’ 결정으로 설득하고, 윤 대통령과 야당은 무조건 승복해야 ‘58 대 36’의 갈등을 봉합할 수 있다. 탄핵 결정이 내전의 종식이 아닌 확전의 시작이 된다면 탄핵이 인용돼도 성공한 탄핵이 아니고, 탄핵이 기각돼도 성공한 기각이 아닌 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