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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님 고마웠어요" 전 세계가 눈물로 배웅했다종교문화 2025. 4. 28. 06:48
지난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을 운구한 차량은 흰색 ‘포프 모빌(Popemobile·교황의 차)’이었다. 일어서서 타는 무개차(無蓋車)다. 교황은 대중 행사 때마다 이 차를 즐겨 탔다. 자신의 모습을 되도록 많이 드러내고, 중간중간 멈춰서 아이들에게 축복을 내리기도 했다. 교황은 자신의 관을 실어 나를 차량으로 이 차를 지목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평소처럼 모든 이와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려 한 셈이다.
교황의 관을 실은 포프 모빌은 26일 오후 12시 30분쯤 바티칸을 떠나 로마 시내를 가로지르는 역사적 운구 행렬을 시작했다. 1903년 레오 13세 교황이 역시 로마 시내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장된 이후 122년 만이다. 운구 차량은 신자들이 교황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평균 시속 14㎞로 천천히 이동했다. 앞뒤 각각 2대의 의전 차량과 함께 추기경 10여 명과 교황의 가족 및 친지가 탑승한 차량이 뒤를 따랐다.
운구차는 교황의 거처였던 산타 마르타의 집 앞을 지나 바티칸 성문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로마 시내로 이어지는 ‘폰테 프린치페’ 다리를 건넜고, 로마의 대표 명소인 베네치아 광장과 포로 로마노 유적, 콜로세움을 지나 장지(葬地)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성모 대성전)을 향했다. 약 40만명의 로마 시민이 거리에 나와 교황을 눈물로 배웅했다. 곳곳에서 박수와 함께 “교황 잘 가요” “고마웠어요” 등의 인사말이 쏟아졌다. 많은 이가 교황의 사진을 들고 나왔고, 곳곳에서 바티칸 시국 깃발과 이탈리아 깃발, 교황의 모국 아르헨티나 국기가 휘날렸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장례 미사가 열렸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꼬박 사흘간 조문객을 받은 교황의 관이 파르비스(성당 입구 앞의 넓은 공간)로 나오자, 성 베드로 광장부터 바티칸 바깥 대로까지 들어찬 25만명의 추모객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곳곳에서 “산토 수비토!(당장 성인으로!)”라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부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등도 일어나 예를 표했다. 전 세계 60여 국 정상과 왕족, 국가 원수, 160여 국 대표단이 장례 미사에 참석했다.
관이 붉은색 카펫 위에 놓이자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 단장의 기도로 미사가 시작됐다. 성경 구절을 읽는 ‘말씀의 전례’에서는 영어로 사도행전 10장 34절, 스페인어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3장 20절, 라틴어로 요한복음 21장 15절의 내용을 읽었다. 교황이 평생 인종과 국적에 차별을 두지 않고 만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썼으며, 성 베드로 사도의 후예로서 남김없이 헌신했음을 기렸다.
강론에서 레 추기경은 “교황은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부활절 미사에 나온 군중을 맞이하며 자신을 주님께 봉헌했다”며 “그는 진정 대중의 교황이었다”고 했다. 또 “교황은 잔혹한 전쟁, 숱한 죽음과 파괴에 맞서 쉼 없이 평화를 간청하고 이성적이고 진실된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간청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제는 교황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이라고 했다.
신자들의 기도는 프랑스어·아랍어·포르투갈어·폴란드어·독일어·중국어 등 6개 언어로 낭독됐다. 교황 장례식에서 중국어 기도문이 낭독된 것은 처음이다. 중국 선교에 큰 관심을 쏟아 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가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곧이어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성찬례가, 이후 마지막 기도와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그리스-멜키트(중동 지역) 가톨릭의 유세프 압시 총대주교가 그리스어 기도문을 바쳤다. 마지막으로 레 추기경이 교황의 관에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운 뒤, 모든 이가 일어서 라틴어 성가를 부르며 장례 미사는 끝났다.
교황의 관은 오후 1시쯤 성모 대성전에 도착했다. 그를 처음 맞은 것은 로마의 가난한 이들과 아이들이었다. 이들은 교황이 생전에 좋아했던 성녀 테레사의 꽃인 흰 장미를 바쳤다. 교황의 관은 구약성서 시편을 노래하는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의 묘는 유언대로 성모(聖母)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이 걸려 있는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 마련됐다. 비석엔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라는 라틴어 이름과 십자가만 새겨졌다. 마지막 하관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날부터 9일간의 공식 추모 기간(노벤디알리)이 시작됐다. 이 기간 매일 추모 기도회가 이어진다. 교황의 묘는 27일 오전 7시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차기 교황을 뽑는 추기경들의 비밀 선거 콘클라베는 다음 달 5~10일 사이 시스티나 성당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70여 국 133명의 추기경들이 모인다.
2025년 4월 28일
"교황 고마웠어요" 전 세계가 눈물로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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