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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안보상 문제는 없나스크랩된 좋은글들 2025. 6. 11. 05:57
[한삼희의 환경칼럼]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안보상 문제는 없나
해저 전력선은 정체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 타격 주는 그림자 전쟁에 취약 6개월 전에도 유럽 발트해 HVDC 절단 사건 발생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토론에서 “원전이 위험한 에너지라는 생각은 여전하다”면서 “원전을 활용하되 너무 과하지 않게 (쓰면서) 재생에너지 중심 사회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또 “기존 원전은 계속 잘 쓰자는 입장”이라면서도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해선 “어디 터가 있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공약에선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2040년까지는 서해~남해~동해를 잇는 U 자형 한반도 에너지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했다.원전이 위험하다는 주장에 대해 데이터는 완전히 다른 통계를 말하고 있다. 권위 있는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서 테라와트시(TWh·한국 연간 전력 사용량은 600TWh 정도)당 사고와 대기오염으로 인한 전(全) 과정 사망자 수를 보면 석탄 발전은 24~32명, 가스 발전 2.82명인데, 풍력은 0.04명, 원자력 0.03명, 태양광 0.02명이다. 체르노빌은 워낙 말이 안 되는 구(舊)소련의 원자로 노형에서 일어났던 사고였고, 미국의 스리마일과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선 방사선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유럽 합동연구센터 분석에서도 현재 건설되는 주력 원전인 3세대 원자로의 중대 사고 치명률은 태양광의 37분의 1, 해상 풍력의 12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열흘 뒤 영국의 저명한 환경 전문가 조지 몬비오는 ‘나는 원자력에 중립이었는데 후쿠시마를 보고 원자력 옹호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게 끔찍한 사고가 났는데도 방사선 희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 유엔 산하 방사능영향과학위원회(UNSCEAR)는 28국 전문가 80명이 2년 조사 끝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지역에서 평생 살아도 (의료 CT 한 장 수준인) 10밀리시버트(mSv)의 방사선에 추가 피폭(被爆)될 뿐’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언론은 외면하고 대중은 믿지 않지만 과학 분석들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원자력 공포의 허구를 거듭 확인시켜 준다.
태양광·풍력은 우리 국토가 비좁다는 근본 한계를 안고 있다. 산림을 제외한 평지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밀도는 독일의 4.1배, 영국의 4.6배, 프랑스 8.4배, 스페인 9.5배, 미국의 28배나 된다. 태양광·풍력을 최대한 늘려야 하지만 원자력 같은 고밀도 에너지로 보강할 수밖에 없는 지리 조건이다.
우리 전력 구성은 원자력이 30%, 태양광·풍력은 10%다. 한전의 작년 전력 구입 단가는 원자력이 kWh당 66.37원, 태양광·풍력은 138.59원이었다. 딱 봐도 원자력 전기를 팔아 이윤을 남겼고, 그 돈으로 신재생 전기를 비싸게 사들였다. 원전을 줄이거나 없앤다면 한전은 태양광 전기를 비싸게 사줄 수 없어 태양광 사업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전이 태양광 사업자의 이익을 계속 유지시켜 주려면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싸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의 뒷받침을 받았던 산업 경쟁력은 추락할 것이다. 한마디로 ‘원자력 형’이 계속 돈을 벌어줘야 그 돈으로 ‘태양광 동생’이 약진할 수 있고 경제도 버텨낸다.
이 대통령의 핵심 에너지 공약인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는 서해 해저에 2GW짜리 네 개 루트의 초고압직류(HVDC) 송전망을 깔겠다는 것이다. 육상 송전선로가 지역 반대로 여의치 않자 나온 아이디어다. 해볼 만한 구상이지만 북한 등 적성국의 이른바 ‘하이브리드 도발’에 노출되지 않겠느냐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작년 12월 25일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연결하는 발트해 해저 HVDC 전력선이 끊어졌다. 핀란드 당국이 현장을 지나던 러시아 유조선을 나포해 조사한 결과 유조선이 닻을 바닥으로 끌어 650MW 용량 전력선이 손상되고 인터넷 광통신선 4개가 절단된 것을 확인했다. 선원들은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에스토니아 외무부는 “핵심 인프라에 대한 고의적, 조직적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다. 진상은 아직 불투명하고 전력선은 이달 말에야 복구된다.
해저 인프라 파손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에 타격을 가하는 비대칭 그림자 전쟁의 한 형태일 수 있다. 2022년 북해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역시 어느 나라 소행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고립된 전력망이어서 핵심 송전선이 파괴되면 전체 전력 공급이 위태로워지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 한전은 서해 해저 전력선을 바닥 표토를 파서 묻거나 돌망태로 덮는 공법으로 구조적 안전성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이성학 송변전건설단 실장). 그러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훼손 같은 준(準)군사적 공격에도 방어가 충분히 가능한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전력은 산업과 국민 생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만큼 상정 가능한 위험에 다 대비해야 한다.
2025년 6월 11일 조선일보 한삼희 환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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