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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사언 묘역 답사기
    종교문화 2020. 6. 10. 18:16

     

     

    양사언 묘  답사기

    양사언의 묘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길명리산193번지에 위치해있다고 했다. 이주소로 찾아가보려고  집에서 아침 6시경에 출발했다. 청량리에서 지하철 1호선을 이용하여 의정부역까지가서 그곳에서 138번차가 포천에 간다고 해서 타고 운전기사에게 일동면가느냐고 했더니138-5번으로 환승하라고 했다. 환승하고  일동터미날에서 하차했다.

     

    일동면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택시기사에게 길명리 산 193번지에 양사언 묘가 있다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택시기사가  내비게이숀이 가르키는대로 갔더니 양사언의 묘소 이정표가 없다며 그곳주민에게 물으니 므르겠다고 해서 다시 한 어르신에게 물었더니 잘못들어왔다고 했다. 알려주는 곳은 그곳에서 거리가 반대방향이었고 조금 멀었다. 택시기사분 미안해하며 열심히 성심껏 안내를 잘해주었다

     

    택시기사가 가다가 다시 물어 산속으로 들어갔다. 조금있으니 양사언 선생묘라고 안내표지가 보였다.

     

     

     

     

     더들어가니 묘소로 가는 묘도가 갸파른 돌계단으로 되어있었다몸이 불편하여 지팡이에 의지하여 올라가보니 묘가 있는데 한 400여년이 지난 묘라서 그런지 묘봉은 산모래로 되있고 잔디는 보이지않았다.

    묘소앞엔느 양사언 선생묘라고 안내문이 아래와 같이 있었다.

     

     

    양사언 선생묘 향토유적 제 32호 포천군 일동면 길명리

    조선전기의 문신. 서예가인 양사언(1517~ 1586) 선생의 묘이다. 봉분 하단은 자연석 쌓기 시멘트 다짐으로 3단 호석을 들렀으며 봉분의 높이는 1.5m, 둘레는 16.2m이다. 묘 앞에는 비두에 연화문이 조각된 묘비와 상석, 향로석 그리고 좌우에는 동자 문인석, 망주석 등의 석물이 각각 배치되어있다.

     

    비명은 용주조경이 지은 것으로 비의 규모는 높이가 152cm, 49cm, 두께 20cm이다. 묘역 입구에는 숙부인 음성박씨와 간성이씨 두 부인의 묘가 위치해있다.

     

    선생의 자는 응빙, 호는 봉래, 완구, 챵해, 해객이고, 본관은 청주, 주부 희수의 아들이다.

    명종1(1546)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대동승, 삼동현감, 평창군수, 강릉부사, 함흥부윤 등을 역임했다. 회양군수로 있을 때는 자주 금강산에 드나들어 만폭동 바위에 새긴 봉래풍악원화동천 이란 글씨를 남겼고 금강산 유람기를 짓기도 했다. 안변도호부사로 있을 때, 지능 화재사건의 책임을 지고 해서에 유배되었다가 2년후 풀려 오는 길에 병사했다. 운명직전에 비()자 한자를 크게 써놓고 우화이등선(羽化而登仙) 했다는 전설도 있다.

    태산이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는 너무나 유명한데 선생의 시는 천의무봉하고 기발했으며 시집으로는 봉래시집은 남겼다. 특히 초서와 큰 글자를 잘 써서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분으로 꼽힌다.

     

     

     

     

     

     

     

     

     

    헌성록(獻誠錄)

    동면(東面)에서 아침이가장먼저밝는봉래마을 길명리를 감싸는 금주산(金珠山)의 의 양지바르고 위험(威嚴)과 온유(溫柔)가 겸비(兼備)한 서기지능(瑞氣之陵) 축좌원(丑坐原)이 통정대부(通政大夫) 행안변대도호부사(行安邊大都護府使) 봉래공(蓬萊公) 선조(先祖)의 주성(住成)이시다.

    할아버님께서는 조선전기(朝鮮前期) 사대명필(四大名筆)이시고 대문장가(大文章家)로서 두아우 사준(士俊), 사기(士寄)와 더불어 명문을 떨치시어 중국(中國)의 미산삼소(眉山三蘇)에 견주었으니 선비로서 학자(學者)로서 고고(孤高)한 면모(面貌)를 갖추신 분이시다. 관직(官職)에 임하시면 백성을 먼저 생각하시고 지도자의 자세(姿勢)를 가다듬어 청백리(淸白吏)의 본을 보이시고 선정(善政)을 베푸신 업적(業績)은 오늘의 모두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바이다.

     

    묘역(墓域)을 이룬 이래(以來) 4백여성상(400星霜)의 세월(歲月)의 흐름 속에 모역(墓域)이 산만(散漫)하고 허술하여 송구(悚懼)하던 중 묘하(墓下)의 후손(後孫)들과 뜻있는 원근(遠近)의 자손(子孫)들이 정성(精誠을 모두어 사초(莎草)와 아울러 오르는 묘도(墓道)에 석계(石階0를 축조(築造)하고 주변을 말끔이 단장하여 아름다운 묘원(墓園)을 이루었으니 실로 보람스러운 일이고 후대(後代)에 크게 깨우쳐 가르침을 주는 일이다. 이 역사(役事)는 성적위원장(性的 委員長과 형근총무(亨根總務)의 일념(一念)의 숭조정신(崇祖精神)과 헌신적(獻身的)인 노력(努力)의 결실(結實)인바 치하(致賀)의 정성(精誠)을 표()하는 바이다. 이제 만인(萬人)에 교훈(敎訓)이되는 할아버님의 유작 시조(遺作時調)를 시비(詩碑)로 마련하고 모두의 정성(精誠)을 담은 헌성록(獻誠錄)을 나란이 견립(堅立)하여 묘원(墓園)을 조성하였으니 할아버님의 명성(名聲)이 영원(永遠)하듯이 후손(後孫)들의 갸륵한 숭조정신(崇祖精神)과 더부러 아름다운이 묘원(墓園)도 역만년(億萬年)이 지나도록 일그러짐이 없으리로다.

    20021117

    봉래공 묘원 조성 추진위원회(蓬萊公 墓園 造成 推進委員會)

     

     

     

     

     

     

    양사언 선생의 제사를 지내는 길명사을 찾았다. 처음에는 사찰에서 제사을 지내는가 했는데 현장에 가보니 사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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