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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실천이 공부의 완성스크랩된 좋은글들 2020. 12. 21. 08:05
우리는 왜 공부를 할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공부를 하든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성장에 있을 것이다.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성장할 수 있을까? 조선시대의 과거시험에서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다. 1602년 선조는 과거시험에서 “공부에는 네 가지 조목이 있으니 바로 존양(存養), 성찰(省察), 치지(致知), 역행(力行)이다. 그에 대해 자세히 말해볼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한 문신 조희일(1575∼1638)의 답변은 공부의 근본적인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공부의 첫 단계는 배우고 익혀서 앎에 도달하는 ‘치지’이다. 무엇을 공부하든 배워서 익히는 일이 첫 단계다. 대상을 치열하게 연구하고 파고들어 기초 지식을 쌓고 근본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느 쪽이 의로운지, 효과적인지를 알게 됐다고 해서 즉각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선조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방계 출신으로 보위에 오른 선조는 부족한 정통성을 메우기 위해 매일매일 경연에 나가 공부했다. 경연은 유학자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자리로, 선조를 가르친 스승들은 퇴계 이황, 고봉 기대승, 율곡 이이, 우계 성혼 등 한국 사상사를 대표하는 석학들이었다. 더욱이 조선 제왕학의 전범으로 불리는 이황의 ‘성학십도’와 이이의 ‘성학집요’는 바로 선조를 위해 저술된 것이다. 그러니 선조는 왕으로서의 자세와 책임에 대해 정말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하지만 선조는 오만하고 독선적이었다. 또 여러 과오를 저질러, 성군이 돼 달라는 이황과 이이의 간곡한 당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는 선조가 뭘 몰라서가 아니다. 무엇이 올바른지 알고는 있었지만 반드시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고 마음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지만 진심으로 수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부에서 ‘존양’과 ‘성찰’이 강조되는 이유가 그래서이다. 조희일은 ‘존양’을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이 ‘존’이고, “마음이 언제나 맑고 투명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마음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양’이라고 설명한다. ‘존양’이 내면의 생각을 바로잡는 공부라면 ‘성찰’은 외면의 행동을 교정하는 공부다.
조희일은 성찰에 대해 “행실을 살펴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릇된 행동을 했다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곰곰이 살펴보고 반성해 다시는 그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성찰이다. ‘성찰’은 ‘존양’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표출되기 전, 마음의 단계에서는 존양이 적용되고 행동으로 표출된 후에는 성찰의 영역일 따름이다. 마음이 바르면 행동이 발라지지만 반대로 행동을 가다듬고 신중히 해도 마음이 정돈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즉, ‘존양’과 ‘성찰’은 함께 병진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부는 ‘치지’를 토대로 ‘존양’과 ‘성찰’을 통해 발전한다. 이것으로 끝일까?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이다. 이미 지식이 있으니 충분하다며 멈춰서는 안 된다. 계속 배우고 익히며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더욱 깊게 학문을 연마해야 한다. 또 배웠으면 반드시 그것을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깨달음이 단지 머릿속 지식으로만 남는다면 결코 나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과정을 평생토록 이어가는 것, 거기에 자신의 힘을 남김없이 쏟아내는 것이 바로 ‘역행’이다.
조희일이 쓴 글을 보면 지레 공부가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치지’ ‘존양’ ‘성찰’ ‘역행’ 같은 낯선 성리학 용어가 나열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희일은 공부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을 말하고 있다. 공부를 할 때는 치열하게 파고들어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 깨달은 내용을 실천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곱씹을 만한 얘기다. 공부를 통해 나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해 깨달은 바를 올바로 구현하고 꾸준히 최선을 다한다면 완성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스크랩된 좋은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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