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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청문회 오른 대북전단금지법, 폐지해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4. 17. 08:34

    미 청문회 오른 대북전단금지법, 폐지해야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개최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 관련 청문회에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가 증인으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미국 하원 톰 랜토스 인권 위원회가 15일(현지시각)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한반도의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화상 청문회를 개최했다. 북한 인권 실상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이번 청문회는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일성 생일에 맞춰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김일성 생일 맞춰 청문회 열어 ‘전단 금지’ 비판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법…글로벌 표준 따라야

     

    청문회에선 “(한국을 겨냥한) 불필요한 정치화는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참석자 대부분은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대북전단 금지법’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인권위 공동 위원장인 크리스 스미스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한국 대중음악의 북한 유입을 막는 ‘반(反) 성경·BTS 풍선법’”이라고 맹공했다.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의원들의 정책 연구 모임 수준”이라고 깎아내렸지만, 랜토스 위원회는 미 의회에서 명망 높은 초당파 상설 위원회다. 중국·아이티·나이지리아 등을 겨냥해 인권 청문회를 열어왔다. 미국의 동맹인 대한민국이 그런 독재 국가들과 동급으로 낙인 찍혀 미 의회의 도마 위에 오른 건 1987년 민주화 이래 처음이다. ‘민주화·산업화를 동시 달성한 모범국가’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참담한 일이다.

    청문회는 유럽연합과 유엔에서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시점에 때맞춰 개최됐다. 미국만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있는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 소련·동구 몰락의 가장 큰 요인이 ‘외부 정보 유입’이었다. 독재에 신음하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급해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운 것이 소련·동구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데 미국·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한국이, 인권 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 집권 이후 수년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에서 빠지더니 급기야 북한에 정보를 공급해온 인권운동가들을 엄벌하는 법을 만들었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한국 성토에 나서게 된 이유다.

    정부·여당은 ‘접경 주민의 안전’ 운운하며 대북전단금지법 처리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그런 논리는 핑계일 뿐 본질은 김정은 비위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 의회가 다음 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권 청문회를 연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련한 외교 전문가다. 상원 의원 시절 ‘인종 청소’로 악명 높았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 면전에서 “당신은 망할 전쟁범죄자”라고 일갈할 만큼 인권 문제에 비타협적인 지도자다.

    한·미 동맹은 군사 동맹에 앞서 민주주의·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이다. 미국이 작심하고 대북전단금지법을 비판하고 나섰는데도, 납득하기 힘든 변명으로 넘어가려 하면 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가해질 수 있다.

    미 의회가 청문회를 일회성 행사로 하고 지나갈 것이란 생각도 오산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발표한 인권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제약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청문회 개최에 명분을 던져줬다. 또 우리 정부가 청문회의 파장 축소에 급급하자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 대북전단금지법을 재검토할 도구를 갖추고 있다(14일)”며 다시금 청문회에 힘을 실어줬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미 의회뿐 아니라 미 행정부의 핵심 관심사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함의를 꼼꼼히 따져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만일 경고음을 무시하고 ‘마이 웨이’를 고집하면, 미 의회에서 ‘한국 인권 규탄 결의안’이 통과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인권 문제만큼은 ‘글로벌 표준’을 맞추는 게 시급하다. 접경 지역 주민의 안전을 효율적으로 지킬 방안을 강구하되, 헌법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대북전단금지법은 폐지하는 게 맞다.

     

                                    2021년 4월 17일 중앙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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