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親日) 잔재를 청산하겠다며 1년여 전 교가(校歌)를 바꾼 광주제일고가 폐기한 교가의 실제 작곡가가 누구인지를 놓고 혼란에 빠졌다. 교가 작곡자가 친일 인물이라며 교가를 바꿨는데, 항일 운동 가문에 속한 인물이 교가 작곡자라는 다른 기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친일 교가 논란은 2019년 1월 불거졌다. 지역 언론을 통해 교가 작곡가 이흥렬(1909~1980)씨가 친일 인명사전에 오른 음악가란 점이 알려졌다. 광주시교육청은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씨의 친일 행위를 사료로 확인했다며 교가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해 4월 교사와 학부모, 학생, 동문이 참여한 교가제정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김종률씨를 작곡자로 위촉했고, 재학생을 상대로 가사를 공모했다. 11월에는 시연회를 거쳐 새 교가가 완성됐다. 김상곤 광주서중일고총동창회 회장은 당시 축사에서 “후배들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 현대사의 불행을 단호히 배격하고, 새 교가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혼연일체가 됐다”며 “마침내 흠결없고 자랑스러운 교가를 부르게 됐다”고 했다. 광주일고 학생들은 지난해 초부터 새 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면서 광주서중 1960~1972년 졸업 앨범에서 교가 작사가가 이은상, 작곡가는 박태현으로 표기된 사실이 확인됐다. 광주일고는 1962년부터 광주서중 교가를 음표, 가사를 바꾸지 않고 함께 사용했다고 한다. 두 학교는 1920년 개교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뿌리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광주일고 졸업 앨범에는 1965년까지 ‘작사 이은상, 작곡 박태현’으로 명기됐는데, 1966년 앨범부터 ‘작사 이은상, 작곡 이흥렬’로 바뀌었다. 같은 교가를 두고 광주일고 졸업 앨범에 다른 인물의 작곡가가 표기된 것이다. 어떤 경위로 이런 일이 생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태현 친형은 일제 시대 이완용 저격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박태현은 ‘3·1절 노래’ ‘한글날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다. 광주서중 졸업 앨범처럼 광주일고 교가 작곡가가 박태현이 맞다면, 광주일고는 엉뚱하게 친일 청산을 명분으로 졸속으로 교가를 바꾼 게 된다.
앞서 2019년 1월 초 광주일고 교가 만들기 TF는 과거 광주일고 졸업 앨범 사료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서중 자료까지 교차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광주일고 측은 “친일에 비판적인 여론에 휩쓸려 자세하고 세밀하게 사료를 살펴보지 못한 것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광주일고는 당분간 교가 논란에 휩쓸릴 전망이다. 광주일고 관계자는 “광주서중 자료를 토대로 당장 57년 전통의 교가를 복원하자는 내부 구성원의 목소리가 높다”고 말했다. 동창회 측은 “논란이 불거진 만큼 관련 사료를 더 정밀하게 확인한 뒤 최종적으로 교가를 선택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