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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신창이’ 한국군… 대통령과 수뇌부, 위기의식부터 가져야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1. 6. 23. 07:22

     

    중국 해군 랴오닝 항공모함 전단/연합뉴스

     

    “앞으로 한국 해군은 동경 124도 선을 넘어오지 말라.”

    지난 2013년 7월 중국을 방문한 최윤희 당시 해군참모총장에게 우성리(吳勝利) 당시 중국 해군 사령원(사령관)은 이렇게 요구했다. 동경 124도 선은 백령도 바로 옆 해상을 지나 우리 해군의 작전권에 속하는 곳이었다. 이에 최 전 의장은 “동경 124도는 국제법상 공해이고 북한의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동경 124도를 넘어 우리 해역에 침투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작전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중국은 그 뒤 우리 해군 함정이 동경 124도를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면 “즉각 나가라”고 경고 통신을 하는 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맞춰 중국이 서해를 자신들의 안마당으로 삼으려는 ‘서해 내해화(內海化)’도 가속화하고 있다. 여기엔 중국 북해함대의 위상 강화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북해함대는 대만해협을 담당하는 동해함대 사령부, 남중국해 분쟁을 담당하는 남해함대 사령부에 비해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 하지만 중국 첫 항모 랴오닝함이 칭다오(靑島) 인근의 위츠(漁池) 해군 기지에, 아시아 최대의 전투함으로 불리는 최신예 055형 구축함(중국판 이지스함) 2척이 함대 3개 중 북해함대에 가장 먼저 배치되면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중국은 지난해부터 백령도·대청도·흑산도 서쪽 해역에 경비 함정 5척을 상시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 중국은 124도 인근 해역에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대형 부표 8개를 설치했다. 잠수함과 무인 잠수정 등 수중 전력의 활동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에선 서해 방공식별구역(KADIZ) 무단 진입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해상 민병 등을 동원해 서해를 서서히 잠식해가는 ‘회색 지대 살라미’ 전술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백형선

     

    우리 군이 직면해 있는 안보 위협은 중국의 서해 도발만이 아니다. 현존 최대 위협인 북한은 외형상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및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핵실험 등 이른바 고강도 전략적 도발은 자제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 사이버전에선 우리를 향한 공격이 쉴 새 없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엔 원전과 핵연료 원천 기술 등을 보유한 최상위 국가 보안 시설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해킹당한 사실이 야당 의원의 공개로 밝혀졌다. 우리 해군의 모든 잠수함을 건조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난해 해킹 시도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의 핵 시설은 가동돼 핵무기 숫자는 늘고 있고, 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 안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지난 14일, 북한이 올 1월 기준 핵탄두 40~50개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10개가량 증가한 수치다. 일부 연구 기관은 북한이 올해 말까지 핵탄두를 최대 100개가량 가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당 8차 대회에서 전술핵무기, 핵추진 잠수함, 극초음속 무기, 다탄두(多彈頭) 및 고체 연료 ICBM 개발 등을 공식화했다. 북 체제 특성상 북한의 국방과학기술자들은 김정은의 이런 지시를 이행하려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이 지난 3월 시험 발사에 성공한 KN-23 개량형 미사일(최대 사거리 600㎞)은 이미 전술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런 미사일과 신형 방사포 수십 발을 ‘섞어쏘기’하면 기존 한미 미사일 요격망으론 속수무책이다.

     

    북한은 물론 주변 강국의 안보 위협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맞서야 할 한국군은 현재 사실상 만신창이 상태다. ‘걸어 다니는 종합 병동’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각종 무기 체계 등 하드웨어와 군 기강 등 소프트웨어, 고위 간부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사건이 터져 나오고 앓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 불거진 공군 성추행 부사관 사망 사건과 부실 급식 논란은 그 상징적인 사례다.

    지난 1월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8차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선보인 단거리 탄도미사일 '북한판 이스칸데르'의 개량형. 2021.3.25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군 수뇌부와 간부들에게서 북한과 주변 강국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고 유사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요즘 군 간부들은 적과 싸워 이기는 부대를 육성하는 것보다 병사들에게 약점이 잡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임기를 마치거나, 부하 병사들을 사실상 보육원이 된 군에서 사회로 전역시키는 게 주 임무가 됐다”고 한탄했다.

    스티븐 비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저서 ‘군사력: 현대전에서의 승리와 패배’에서 1·2차 세계대전과 걸프전 주요 전투의 사례 분석을 통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무기 수준이나 병력 규모가 아니라 ‘어떻게 싸우느냐’, 즉 전투력 운용의 현대적 체계에 있다고 밝혔다. 정연봉 전 육군참모차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저서 ‘한국의 군사혁신’에서 미국·독일·이스라엘의 군사 혁신 성공에는 군 지도부의 위기의식(감), 국가 또는 군 차원의 핵심 역량, 군 지도부의 변혁적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위기의식이 클수록 군사 혁신에 성공했다고 강조했다.

     

    지금 군 통수권자를 포함해 우리 군 수뇌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위기감, 위기의식이다. 북한과 주변 강국의 위협에 맞설 군사력은 미사일 지침 해제에 따른 신형 미사일 개발 등 하드웨어만으로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통수권자와 군 수뇌부가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자세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한국군의 환골탈태를 위한 절박감부터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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