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으로 문재인 당선이 유력했던 2017년을 제외하면 당내 경선에서 먼저 선출된 대선 후보가 본선에서 대통령이 됐다. 1987년 6월 민정당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후보가 11월에 선출된 김영삼(YS), 김대중(DJ)을 꺾었다. 1992년 대선에서는 YS, 1997년 대선에서는 DJ 모두 5월에 상대 당보다 먼저 후보로 선출되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2007년과 2012년 이명박, 박근혜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대선 승리 공식을 후보 선출 시기에서만 찾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도 있다. 야구 경기에서도 선발투수를 등판시키려면 4, 5일 정도 휴식 시간을 준다. 아무리 잘 던지는 에이스라고 해도 본경기 직전까지 연습 강행군을 하고 허겁지겁 마운드에 오른다면 실력 발휘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선도 총력전인 만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1인 오너’ 정당 체제가 무너지면서 정당의 대선 후보 경선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여야 대결보다 내부 경쟁에서 쌓인 앙금은 더 오래가는 법이다. 하루라도 빨리 후유증을 수습하고 흐트러진 대열을 정비하는 것이 다급해지는 이유다. 초반에 승기를 잡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캠프가 경선 연기론에 제동을 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재명은 경선에서 승리했지만 그 후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지지율이 오르기는커녕 아직도 30%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 있다. 과거 성남시장 시절 벌어진 대장동 게이트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용광로 선대위’를 발족시켰지만 ‘원팀’이라고 보기는 민망해 보인다. 이재명을 향한 이낙연계 설훈의 쓴소리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경선 승리는 결승점까지 가야 하는 대선 레이스의 반환점을 돈 것일 뿐이다. 이젠 당원 중심의 지지층을 뛰어넘어 중도·무당층을 향해 외연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전제가 있다. 지지층이 굳건히 결집해 있고, 새로운 노선 전환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후방 기지가 불안하면 전쟁 수행이 어려운 법 아닌가.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기존 노동당 노선을 뒤집는 ‘제3의 길’을 내걸고 18년간 패배의 늪에 빠진 노동당을 살려냈다. 그 배경엔 노선 수정에 반발하는 당내 급진좌파 세력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세월이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여당 소속 박근혜 후보가 높은 정권 교체 여론에 상승세를 탄 문재인을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경제민주화 등 기존 보수 노선을 쇄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당 지지자들은 본선 승리를 위한 전략 변경에 손을 들어줬다.
당내 균열과 앙금을 털어내지 못하면 후유증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정치는 생물이다.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흔들리면 1997년 이회창, 2002년 노무현 때 겪었던 후보 교체론이 부상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재명 캠프는 측근들이 연루된 대장동 리스크에 대한 당내 우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 본선 후보를 확정한 국민의힘도 시험대에 올랐다. 윤석열, 홍준표의 맞대결은 상당히 격렬했다. 홍준표는 승복한다고 했지만 홍준표 지지자들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당 안팎에선 윤석열에 대해 보수 성향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킨 장본인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도 여전하다. 윤석열이 범보수 세력의 지지를 온전하게 이끌어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경선에 이겼다고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