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시인 공광규는 ‘얼굴 반찬’에서 각자 성공을 위해 달려가느라 저녁 한 끼조차 함께 먹지 않는 한국 가정의 살풍경한 모습을 그렸다. 아빠는 승진과 더 높은 연봉을 위해 밥 먹듯 야근하고, 명문대 입학해 좁은 취업문 뚫어야 하는 자녀는 학원 전전하느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운다. 한 해외 언론은 이렇게 된 이유로 ‘한국인의 지나친 세속적 물욕’을 꼽은 적도 있다.
▶이런 지적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엊그제 발표됐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올해 전 세계 17개 선진국 1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을 1위로 꼽았다. 각국 응답을 평균 내보니 ‘가족’ ‘직업’ ‘물질적 행복’ 순이었다. 한국도 전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2019년도 한국인 행복 조건 조사에선 ‘좋은 배우자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 1위였고, ‘돈과 명성’은 3위였다. 10년 전 한 언론사 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돈벌이도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이니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이 가족과 돈에 대한 가치가 전복된 것이다.
▶영어의 ‘행복하다(happy)’는 ‘발생하다(happen)’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행복하려면 좋은 일을 경험해야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 나라 국민이 경험한 사건들은 한국인의 행복 가치 체계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특히 돈으로 인한 낭패감이 컸다. 무엇보다 치솟는 집값에 수많은 국민이 좌절했다. 영끌을 해도 집 장만이 어려운데 누구는 아파트로 10억, 주식으로 몇 배, 코인으로 수십 배 이익을 챙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행해진다.
▶심리학자 서은국 연세대 교수는 “행복하려면 로또 한 방 노리기보다 가족·친구와 산책 나가고 TV 앞에서 수다 떠는 경험을 매일 하라”고 권한다. 로또는 매주 쓴맛을 남기지만 산책과 수다는 매일 기쁨을 준다. 지극히 당연한 조언인데도 이제는 많은 한국인이 고개를 젓는다.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조금씩 저축하고 가족과 둘러앉아 평범한 행복을 누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벼락 거지’가 됐다고 한탄한다. 우리 국민들이 ‘물질=행복’이라고 대답하게 만든 사람들이 누군가. 정책 당국자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