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12월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캔버라에서 개최된 문재인 대통령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정상회담은 특별한 이유에서 국내외적 관심사였다. 이 회담은 미국의 동맹국 중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유난히 높아 중국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된 두 나라 간에 진행됐기에, 그들 사이에 어떤 동병상련의 대화가 오갈지 관심을 모았다.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두 나라는 미국의 대아시아 동맹 체제를 타파하고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군림하려는 중화 팽창주의의 공격 목표가 되기 쉬운 취약한 연결 고리였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지난 수년간 중국의 집중적 회유, 포섭, 위협, 압박, 제재 대상이 되었다.
이번 회담이 현시점에서 더욱 관심을 끈 이유는 중국이 두 나라를 겨냥해 실시해 온 매우 유사한 형태의 친중국화 공작에 대한 두 나라 정부의 대응이 극명하게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다른 여러 나라에도 그랬듯이 두 나라에 친중·반미 여론 조성, 정치인과 학자의 회유와 매수, 대규모 투자와 스파이망을 동원한 친중 세력 구축 등 광범위한 친중국화 공작과 더불어, 대중국 복속과 굴종을 강제하기 위한 혹독한 제재 조치를 병행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제재에 직면했던 한국은 별 저항 없이 무릎을 꿇었던 반면,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한국보다 컸던 호주는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정면으로 맞섰다.
한국이 2016년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사드 요격미사일을 배치하자 중국은 무역, 투자, 관광 분야에서 대대적 제재 조치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WTO 제소도, 상응 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저자세 외교로 일관했고, 이듬해엔 대중국 ‘3불 약속’이라는 주권 포기적 수준의 약속까지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제재 조치는 아직 해제될 기미가 없고, 중국의 위세 앞에 황망히 머리 조아린 한국 정부는 상주 사드 기지에 대한 공식 허가도, 쿼드 가입도, 합동 해상 훈련도, 화웨이 제재도 거부하면서, 아시아 지역 최대 현안인 남중국해, 홍콩, 대만, 신장 위구르 문제에도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그와는 정반대로, 중국이 호주 정부의 ‘코로나 바이러스 근원에 대한 국제 조사’ 주장에 대한 보복 조치로 작년 5월 호주산 석탄, 보리, 면화, 목재, 와인, 관광객 등 13개 분야 금수 조치를 발표하자, 모리슨 호주 총리는 “중국의 압박 때문에 우리 가치관을 팔지는 않겠다”면서 무역, 투자, 관광, 학술 교류 분야의 대중국 상응 조치 발표로 정면 대응했다. 곧이어 출범한 쿼드와 미·영·호주 오커스(AUKUS) 동맹에도 참여했고, 중국에 대항해 핵잠수함 건조를 선언하는 등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반중국 진영에 밀착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 당초 우려되었던 호주의 경제적 손실은 미미했다. 오히려 가해자인 중국이 석탄 파동으로 큰 국내적 혼란을 겪었고 군사적으로도 소탐대실의 중대한 손실을 자초하게 되었다.
이처럼 거의 동일한 상황에 처했던 한국과 호주가 상반된 정책적 선택을 한 배경은 무얼까? 그것은 ‘가치’에 기초한 호주의 선진국형 외교와 ‘이익’에 기초한 한국의 후진국형 외교의 극명한 대조를 상징한다. 물론 선진국 외교도 이익을 추구하며, 이 때문에 때로 가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어떤 경우에도 경제적 이익 때문에 주권, 민주주의, 인권 등 그들의 핵심 가치를 양보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신봉하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경제적 이익을 희생하며, 한반도나 아프간의 낯선 땅에서 남을 위해 피를 흘리기도 한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선진국과 후진국이 구별되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한국과 호주가 대중국 관계에서 처한 유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가 회담에서 표명한 입장은 동병상련이 아닌 동상이몽이었다. 한국 측은 여전히 중국 눈치 보기와 편 들기에 집착하면서 세계 자유민주 진영의 공동 입장과 상충하는 주장을 반복한 듯하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국격을 의심스럽게 하는 외교적 자해 행위일 뿐이다. 세계 10위권 경제국인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이익’이 아닌 ‘가치’에 기초한 선진화된 외교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속적 경제 이익이 아닌 주권, 평화, 민주주의, 인권 등 국제 문명 사회가 공유하는 절대 가치를 불변의 외교적 토대로 정착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