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직무는 특성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경찰 직무에 대해서는 제약이 많고 권한 부여에도 인색하다. 경찰 직무 과정에서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분명 막아야 한다. 하지만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과 아예 권한을 행사할 여건을 마련해 주지 않는 것은 다르다.
경찰 직무의 본질은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경찰 직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인권 침해를 방지하거나 권한 오남용을 막겠다고 아예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옥죄는 것은 도리어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을 위협한다. 본말의 전도다. 역사 속 경찰의 과오가 트라우마처럼 작용하는 것도 결국은 경찰의 업보지만, 그것이 경찰을 무력화시키는 족쇄가 되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국회에서는 경찰의 형사책임 감면 규정 입법을 두고 논란이 있다. 입법의 취지는 경찰의 모든 잘못을 무조건 면책한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 안전을 지키려다 발생한 부득이한 피해에 대해서만, 그것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는 임의 규정을 넣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경찰권 오남용에 대한 우려부터 주장한다.
경찰의 1차적 수사종결권은 수십 년간의 해묵은 논쟁 끝에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지난해 초 입법화되었고, 지금은 기본이 된 경찰의 위치추적 권한도 반대 여론으로 무산되길 반복하다가 10여 년 전 오원춘 사건 이후에 겨우 입법이 이루어졌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우리에게는 언감생심이던 위장수사도 디지털 성착취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든 이후에야 극히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법적 단초가 최근에 시행됐다. 그때도 입법 과정에서는 경찰에 수사권을 부여하면 인권이 침해된다거나, 위치추적이나 위장수사를 허용하면 남용할 것이라는 수많은 걱정과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떠한가.
하지만 여전히 치안 현장의 수많은 난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마련해 달라는 경찰의 요청은 쉽게 거절된다. 작금의 우리 경찰은, 경찰의 긴급 응급조치를 무시하고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스토커에게 언제까지 과태료 얼마 내라고 소리치거나, 검사를 거쳐 판사에게 유치 명령을 받아올 때까지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처지다. 그동안 제발 ‘별일 없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공백은 소극적인 조직문화를 양산하고 선배 경찰을 통해 후배 경찰에게 학습되며 반복된다.
“아무 실수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민형사상 책임과 ‘물의 야기자’라는 오명과 비난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선의로 인한 작은 실수까지도 막겠다고 경찰의 팔다리를 묶어 놓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 또다시 누군가가 경찰 앞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선량한 국민을 칼로 찌르는 일이 발생한다면, 누구를 또 탓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