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시 눈을 감아봅니다. 대한민국의 과거 반만년 역사와 지금 이 나라의 실상이 오버랩됩니다. 온갖 시련과 상처를 딛고 대한민국의 번영을 일군 선조들과 부모 세대의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이 나라의 내일을 꿈꾸듯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까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꿈꿉니다. 자유·민주·인권 등 헌법상 권리가 존중받는 나라.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지켜지는 나라. 국회에서 다수당의 횡포도 소수당의 몽니도 사라져 협치가 가동되는 나라.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인을 퇴출하는 통합의 나라. 법을 어긴 국회의원은 신속하게 의원직을 박탈하는 나라. 대통령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기자회견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나라. 청와대 특수활동비와 의전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나라. 권력자와 정부 기관이 국민 개인을 상대로 '봉쇄 소송'을 남발하지 않는 나라. 공직자가 법과 양심에 따라 일하는 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나라.
국민이 국가안보를 걱정하지 않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꿉니다. 군인이 누가 적인지를 분명히 알고 대비태세를 확실히 갖춘 나라.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면 도발이라고 규탄하는 나라. 한·미 동맹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잘 가꿔가는 나라. 반일(反日)과 혐중(嫌中)을 정치에 이용하지 않는 나라. 간첩 잡는 국가정보원의 손발을 묶지 않는 나라. 외교관들이 정치 이념이 아닌 국익 외교를 하는 나라. 통일부가 탈북자를 홀대하지 않는 나라.
국민이 경제 실정으로 고통받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꿈꿉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하듯 검증 안 된 경제 정책을 무책임하게 추진하지 않는 나라. 부동산 정책 실패 때문에 집값이 폭등하지 않는 나라. 징벌적 과세 정책이 납세자를 옥죄지 않는 나라. 집 없는 서민의 고통과 전·월세 난민을 초래한 '임대차 3법'을 만들지 않는 나라. 청년이 일자리를 구해 꿈과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나라. 여성들이 경력단절 때문에 좌절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자영업자들이 대책 없이 희생을 강요받지 않는 나라. 이념에 빠진 탈(脫)원전을 무작정 몰아붙이지 않는 나라.
국민이 사회 갈등과 분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꿈꿉니다. 진영·세대·지역으로 갈라지지 않는 나라. 차별과 혐오가 발붙일 곳이 없는 나라. 언론 자유를 겁박하지 않는 나라. 청춘 남녀가 서로 혐오하지 않고 사랑하는 나라.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나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눈물 두 번 흘리지 않아도 되는 나라. 다문화 가정이 소외당하지 않는 나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꿈꿉니다. 경찰이 겁먹고 범죄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는 나라. 아이들이 음주운전 차량에 희생되지 않고 안심하며 뛰놀 수 있는 나라. '정치 방역'을 의심하지 않도록 과학이 존중받는 나라. 산업 현장에서 제2의 김용균 참사가 재발하지 않는 나라. 아파트 공사장 인부가 부실공사로 비극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가 발붙이지 못하는 투명하고 청렴한 나라를 꿈꿉니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선 나라.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지 않고 재판이 불신받지 않는 나라.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대로 수사하는 나라. 경찰이 이해관계를 떠나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나라. 반(反)부패 시스템이 고장 나지 않은 나라. 죄지은 자들이 큰소리치지 못하고 지은 죄만큼 벌 받는 나라. 억울한 사람이 발 뻗고 잘 수 있는 나라.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인한 고통을 덜어주는 나라를 꿈꿉니다. 남녀가 안심하고 결혼·출산·육아를 할 수 있는 나라. 노인이 가난과 외로움으로 고통받다 고독사하지 않는 나라. 연금개혁을 통해 국민의 노후 걱정을 덜어주는 나라. 지방이 인구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는 나라. 균형발전으로 지방에서도 잘 살 수 있는 나라.
꿈은 공짜가 없습니다. 나의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나부터 움직여야 합니다. 불법이 합법으로 포장되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진실을 거짓으로 왜곡하는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용기 있게 나서야 합니다. 결국 내가 행동해야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야 꿈이 실현됩니다. 투표는 그 변화의 시작입니다. 꿈을 실현하는 비장의 무기입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모이면 꽃샘추위를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꿈을 꾸고 행동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022년 3월 7일 중앙일보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