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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 범죄만 뺀 신·구 권력의 야합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2. 4. 25. 06:51

    여야가 합의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중재안은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없애는 게 핵심이다. 선거법 위반이나 직권남용 수사의 대상은 바로 여야 국회의원과 정권 고위층이다. 정치인들이 스스로를 검찰 수사 대상에서 빼버린 것이다. 자기 범죄를 덮고 수사를 뭉개기 위해 여야가 정치적으로 야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불법 개입과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오는 9월부터 검찰이 수사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다른 직권남용 의혹이 드러나도 검찰은 손댈 수 없다. 윤석열 정부에서 발생할 공직자 범죄도 마찬가지다. 떠나는 권력도, 새 권력도 모두 검찰 수사에서 자유로워진다. “부패한 정치인과 권력자들만 좋아진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수사도 힘들어질 것이다. 선거 사건은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해 신속·정확한 수사가 생명이다. 그래서 검찰은 공공수사부를 둬 이를 전담해 왔다. 그런데 9월부터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면 검찰이 지방선거 범죄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게 된다.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지연은 심각한 수준이다. 공소시효에 쫓겨 제대로 수사도 못 하고 면죄부를 주는 일이 속출할 것이다. 선거 범죄 당사자인 정치인들만 살판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선거 공정성까지 무너질 수 있다.

     

    그간 국민의힘은 “정권 비리 수사를 막으려는 위헌적 입법”이라고 결사 반대했다. 하지만 국회의장이 검찰에서 선거·공직자 범죄 수사권을 뺏자는 중재안을 내자 돌연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의 강력한 요구를 이겨낼 수 없었다”는 건 핑계일 뿐 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여론 질타가 쏟아지자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하며 “공직자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국민 우려는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중재안 합의를)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이해 상충이며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졸속 합의를 깨고 다시 협상하는 게 도리일 것이다. ‘4월 말 국회 통과’라는 시한에 얽매일 일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윤 당선인은 작년 3월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는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했고, 이를 기반으로 대선에 출마해 국민 선택을 받았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기존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고 ‘검수완박’에 합의해 줬다. 당선인으로서 당연히 반대 입장을 밝혀야 마땅한 것 아닌가. “국민 우려를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는 두루뭉술한 말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2022년 4월 25일 조선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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