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사진=삼성전자 제공
‘서울의 고층 빌딩을 바라볼 때 나는 그 속의 파이프를 통해 흘러내리고 있을 X의 폭포를 생각한다. (…) 서울의 이 거대하고 운명적인 X을 생각하면서 나는 문득 삶에 대한 경건성을 회복한다.’ 김훈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작가가 소년 시절인 1950년대 분뇨로 넘쳐난 서울 골목길을 회상하며 쓴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요즘 서울시는 분뇨를 하루 1만1844㎥(2020년 기준) 처리하고 있다. 이 작업이 닷새 정도만 지연되면 도시는 마비된다.
▶18세기 유럽의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큰 골칫거리 중 하나가 분뇨 처리였다. 2층 이상에 사는 사람들은 요강이 차면 하수구나 길거리에 그냥 부어 버렸다. 당시 유럽 도시의 길거리 위생 상태는 최악이었다. 여성들은 외출할 때 분뇨가 옷에 묻지 않도록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하이힐’의 원조라고 한다. 챙 넓은 모자도 창 밖 투척에 대비해 옷과 머리를 보호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가 발달했다. 수세식 화장실을 개발하고 하수도 체계를 정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250년 전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화장실은 물과 전기가 없는 저개발 국가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여전히 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5억명은 비위생적 화장실을 쓰거나 그마저도 없어 야외에서 볼일을 본다. 이에 따른 수질 오염으로 매년 5세 이하 어린이 36만명 이상이 장티푸스, 설사, 콜레라 같은 질병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 재단은 2011년부터 2억달러 이상을 들여 물과 전기를 쓰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화장실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사용자당 하루 비용이 5센트가 넘지 않는 조건이었다. 그동안 아이디어나 시제품이 120여 건 나오긴 했다. 바이오 막을 이용해 오염 물질을 걸러내거나 태양열로 가열해 바로 비료로 만드는 방식 등이다. 그러나 가정에서 쓰기에 적합하지 않거나 대량생산하기에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었다. 결국 게이츠 재단은 2018년 삼성에 참여를 요청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이 3년 연구·개발 끝에 내놓은 기술은 고체와 액체를 분리한 뒤 고체는 탈수·건조·연소 과정을 통해 재로 만들고, 액체는 바이오 정화 방식을 적용해 물로 바꾸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일반화된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6·25 때 한국에 온 미군은 도처에 널린 분뇨에 경악했다고 한다. 그런 나라가 이제 저개발국에 첨단 화장실을 지원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