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의사 의거 제 113주년 기념식종교문화 2022. 10. 26. 17:50
오늘 10월 26일은 안중근의사 할빈의거 제 113주년 기념일이다. 안중근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처단하였다.
안중근의사는 9시 30분 앞으로 뛰어나가며 브라우닝 권총으로 이토에게 3발의 총탄을 명중시켰고 바로 러시아군에 의해 체포될 때 의사는 러시아말로 "코레아 우라(대한 만세)"를 연호하였다.
1909년 11월 03일 뤼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는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에 이르기까지 6회에 걸쳐 재판을 받았고 2월 14일 공판에서 일제의 각본대로 사형을 언도 받았다.
"사형이 되거든 당당하게 죽음을 택해서 속히 하느님 앞으로 가라"는 모친의 말에 따라 의사는 이후 공소도 포기한 채, 여순감옥에서 『안응칠역사』와 『동양평화론』의 저술에만 심혈을 쏟았다. 『안응칠역사』는 의사의 자서전이고, 『동양평화론』은 거사의 이유를 밝힌 것이었다.
자전적 기록인 『안응칠역사』를 끝내고,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시작하면서 이것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사형 집행을 연기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이 소망조차도 무시하고 사형을 집행하였고, 그에 따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여순감옥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동양평화론』을 통해 거사의 이유를 새겨 보면 다음과 같다. 의사는 자신의 시대를 서양이 만들어 낸 생활방식인 약육강식의 시대로 이해하고, 그와 같은 생활방식에 따라 발생한 러일전쟁을 서양과 동양의 전쟁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 독립을 공고히 한다'고 하는 일왕의 러일전쟁의 선전포고문에 따라 청 ・ 한 두 나라 국민은 일본을 지원하여 일본의 승전을 도왔음을 거론하고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일본은 패전하고 동양은 서양에 패하여 동양평화는 영구히 깨어졌을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이에 공헌한 청 ・ 한 두 나라 국민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청 ・ 한 두 나라 국민은 동양평화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1962년3월 1일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2022년 10월 26일
'종교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된 기도 (0) 2022.11.21 큰 사람이 되게하소서 (0) 2022.11.20 국민교육헌장: 영문버젼 (0) 2022.10.24 청와대 주변 산책 (0) 2022.10.22 논산 충헌사 충헌공(청주 양씨 시조) 추향대제 (0) 2022.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