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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주변 개방 후, 청와대 안쪽은 친구들과 함께 돌아봤지만 못봤던 그 주변 길을 산책하려 했다. 코스는 종로 3가 종묘에서 출발해서 청와대 춘추관으로 간다음 그곳에서 새로 개방된 등산로를 따라 백악정을 거쳐 청와대 전망대까지 갔다가 칠궁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2022년 10월 22일
먼저 종묘입구 옆에 이상재 동상이 있어 그곳을 둘러봤다.
월남 이상재선생은 1850년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여나 일찍이 1881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의 일원으로 일본의 개화상을 시찰하고 개화자강의 선구자가 되었다. 1896년 서재필등과 함께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이를 통하여 독립신문과 만민공동회운영으로 개화국국의 지도자역활을 하였으며 1898년 자주독립수호 및 구국운동선언의 일환인 헌의 6조를 상소하였다.
1904년 지금의 서울 YMCA인 황성기독교 청년회에 가입하여 교육부 위원장과 종교위원장을 거쳐 1913년에는 서울 YMCA첫 한국인 총무가 되었으며 YMCA업무를 통하여 인재양성과 애국계몽운동을 통한 독립의 기틀을 다졌다.
1919년 일제의 무단통치하에서 비밀리에 기독교, 천도교, 불교 지도자들과 만나 3.1운동을 배후에서 도왔을 뿐만 아니라 1924년 소년척후단(보이스카우트연맹) 초대 총재로서 추대되어 물산장려운동과 절제운동을 벌였다.
1927년 민족의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공동의 적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적으로 조직된 신간회 회장으로 추대되어 독립운동을 하던 중 서거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우리민족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신 강직한 성품과 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따뜻한 동포애는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의 우리사회를 바로 잡는 길잡이가 됨은 물론 이시대를 사는 모든 한국인의 사표가 될 것이다. 이동상은 1986년 4월 10일 선생의 뜻을 기리기위해 월남 이상재 선생동상 추진위원회 에서 걸립한 것이다.
헌의 6조는 고종때 독립협회는 1898년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관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한 6개조 원칙을 결의했다. 이 6개조가 황제에게 헌의된다고 해서 헌의6조라고 했다. 독립협회는 헌의6조를 통해 자주성을 가진 군주주권국가를 확립하되, 서구의 상원의회와 같은 중추원을 설립하여 왕권을 견제하고자 했다. 또한 갑오개혁 때 추진했던 재정기관의 탁지부로의 일원화, 재판제도의 확립 등 여러 개혁조항의 실시를 요구했다. 정부도 헌의6조를 받아들였으나, 국왕의 측근세력은 독립협회를 모함했다. 이에 고종은 독립협회 주요간부의 체포와 독립협회 해산을 명령했다. 체포를 면한 일부 간부들은 관민공동회를 개최하여 항의·농성했는데, 정부는 황국협회를 동원하여 폭력으로 저지했으며, 12월에 독립협회를 강제해산시켰다.
종묘에서 안국역을 거쳐 청와대 춘추관을 향해 거던중 정독 도서관이 있어 그곳으로 들어가 봤다. 정독도서관에 문화정보라며 계시판이 있어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써있었다.
서울구 경기고등학교는 1900년 한국의 첫 근대 중등교육기관으로 출범한 경기 고등학교 본관으로 1938년에 건축되었으며 1976년 강남으로 잊넌한후 현재서울 특별시 교육청 정독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이곳 화동(花洞) 일대에는 조선말기 개학파관료들의 거주지가 자리잡고 있었으며 처음의 학교터는 김옥균의 주택지였고 이후 서재필과 박제순의 집이 합쳐지면서 넓은 부지에 자리 잡게 되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벽돌로 벽을 쌓아올린 3층 건물로 전체적으로는 좌우대칭에 중앙을 강조하는 전형적인 학교건물을 보여주고 있다. 1938년 당시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벽구조 스팀난방 시설을 갖춘 최고급학교 건축물로 서 우리나라 관학 학중등교육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예전 경기고등교(현재 정독 도서관) 구내에 있는 물래방아
청와대 춘추관으로 행했다. 청와대 춘추관 주변은 꽃길로 단장이 되어있었다.
청와대역사
청와대는 서울의 중심부이자 구도심인 경복궁 북쪽에 위치해있다. 이곳은 고려시대(918~1392)부터 궁궐로 사용되었고 조선시대(1392~1910)에는 경복궁의 후원이 있었다. 고종 5년 (1868년)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문무가 융성하길 기원하는 의미로 경무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 강점기 이 자리에 총독 관저가 들어섰고 해방 이후에는 미 군정 사령관이 머물기도 했다. 1948녀 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후에는 대통령 집무실겸 관저로 사용되었으며 1960년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이름을 개칭했다. 1991년 지금의 본관이 들어서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와대 춘추관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니 개방된 등산로가 있어 그길을 따라 올라갔다. 등산로의 경사가 심했다. 힘들게 올라가니 백악정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전망대를 향해 올라 갔다.
청와대를 지나 지하철 안국역을 거쳐 종묘까지왔다가 귀가했다.
오늘 9시 30분 부터 걷기 시작했고 점심을 한후 종로 4가로 와서 뻐스를 탔을때가 2시 반이 되었으니 약 4시간 정도 걸었고 걸음수는 집에 도착후 약 25000보를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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