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화나 연극처럼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볼 수 있는 유력한 방법 중의 하나다. 책을 통해서 만나는 여러 유형의 인간과 그 인간들이 겪는 희로애락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 주고 길잡이가 되어 준다.
빌헬름 텔과 발터 부자(父子) 이야기는 세상의 어느 끈보다도 질기고 강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통해서 사랑과 믿음의 힘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정의와 자유혼이 투철했던 이들 부자는 스위스 건국의 전설적인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이다. 14세기 초, 벨헬름 텔은 오스트리아 봉건 영주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3주(三州) 동맹을 맺고 합스부르크가의 학정에 저항한다. 그는 악명 높은 합스부르크가의 충복인 총독 게슬러의 모자에 경례 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어, 아들의 머리 위에 얹은 사과를 쏘아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받는다.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다. 생존의 계속이냐 죽음이냐를 가르는 화살은 결국 아들의 목숨 대신 사과를 정통으로 꿰뚫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에 자극을 받은 동맹군은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서 스위스의 독립이라는 역사의 새로운 장(場)을 연다.
이 전설적 이야기는 독일의 작가 쉴러가 희곡화 함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의 로시니가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 공연하자 이 전설의 인물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의 파장이 유달리 긴 까닭은, 빌헬름 텔부자의 부자애를 초월한 조국애와 정의감 때문일 것이다. 중고등 학생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빌헬름 댈의 전설은, 스위스 독립 운동사의 정점을 이루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 지구상에 민주주의를 꽃 피우는 씨앗이 되기도 했다. 빌헬름 텔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인물이지만, 교육적으로도 대단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깊은 믿음으로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순간은,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아버지가 쏜화살이 날아가 꽂히는 그순간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의지의 최고점이 어디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막대기 끝에 걸어놓은 모자 따위에 절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얹어놓고 그것을 쏘아맞혀야는 아버지의 운명! 한치만 어긋나도 이들의 목숨을 빼앗게 되는 비정한 순간! 인간의 자유를 말살시킴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시키려는 게슬러의 비정과 폭력에 정면으로 도전한 빌헬름 텔이었지만, 지식의 목숨 앞에서는 어찌 주저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정의와 자유와 인간의지의 최대치를 아들에게 물려주었고, 그래서 이들 또한 담대하게 아버지의 화살 앞에 설 수있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은 아버지가 실수하시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러나 전 아버지를 믿어요. 그 멋진 솜씨로 저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세요. 저 심술쟁이들이 다시는 아무 말도 못하게 해버려요. ”
발터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아버지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 아버지의 정의에 대한 믿음이 발터를 용기있는 소년으로 만든 것이다. 텔은 발터의 머리 위에 얹힌 사과를 명중시켰다. 의지의 최대치로 불의와 폭력을 쏘아 떨어뜨린 것이다.
그 힘은 어마어마한 데에 근원이 있지 않다. 악을 거부하는 정의에의 신념, 아버지와 아들에게 똑같이 심어진 굳은 믿음이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교육의 목표가 이것이고 독서를 하는 의미도 결국 여기에 있다. 텔의 용기와 신념이 아들에게 전파되었듯이, 그들 부자의 훈훈한 감동의 드라마는 독자인 우리에게도 전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