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속담에 ‘미혼모(未婚母)의 변명’이라는 게 있다. 해보았댔자 통하지 않는,하나마나 한 변명에 그렇게 빗댄다. 한데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의 미혼모는 할 말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서 초래되는 잘못된 결과는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에 미혼모는 할 말이 없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잘못된 결과는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미혼모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도 이 같은 한국인의 남의 탓 이란 의식에서 탄생된 개연성이다.
글 잘못 쓰면 필묵 탓하고, 떡이 설면 안반 탓하며, 밥이 질면 나무 탓하고, 양식 떨어지면 며느리 손 큰 탓을 한다. 과식하고서 배가 아프면 논을 산 사촌 탓을 하고. 시집 가서 소박 맞으면 궁합 탓을 한다. 일이 잘못되면 산소 탓을 하고, 못살면 조상 탓을 한다. 길은 갈 탓이요, 말은 할 탓이다.
우리 전통 민요에는 신세타령 하는 내용이 적지 않은데 예외 없이 자신의 비운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 어머니 추야 장 긴긴 밤에 할 일이 없었거든 멧돌이나 돌릴 일이지 엉뚱한 것 돌려서 왜 날 만들었나.’하고 고달픈 운명을 아버지 어머니 탓으로 전가한다.
몇 년전, 한 여성단체에서 윤락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윤락하게 된 동기로 부모 · 친구 · 가난 · 사나이 · 자신의 다섯 가름으로 된 문항 가운데 자신의 윤락을 자신의 책임으로 자책하는 비율은 3%에 불과했다. 거의가 남의 탓으로, 자기 외적인 요인이 자신을 윤락시켰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비단 사인 (私人)뿐 아니라 공인(公人)으로서도 탓투성이다. 정치, 경제, 행정 하는 사람이 크고 작은 나랏일 그르친 적이 부지기수인데, 언제 한번 딱 부러지게 자신의 잘못 탓이라고 내놓고 책임진 꼴을 본 적이 있던가. 그러다가 쫓겨나게 되면 억울하다는 핑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숙종 때 청나라에 갔던 김창업 (金昌業)의 연행일기에 보면 중국 땅에서 안씨(顔氏) 하면 아무리 천직에 있더라도 일단 인격을 갖춘 분으로 존대하는 관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의 먼 조상인 안지추(顔之推)가 후손을 위해 지은 ‘안씨가 훈십조(顔氏家訓十條)’ 를 성실히 지키는 것이 가풍이요 가통이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잘된 일은 반드시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된 일은 반드시 내탓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생활주변의 자질거린 일에서부터 나라를 좌우하는 대사에 이루기 까지 모두 일들을 남의 탓으로 하지말고 내탓으로 돌리기만 한다면 이사회는 좀더 하루가 다르게 아름다은 세상이 되지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