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요즘 꼭 물어보는 말이다. 손흥민이 안와골절 수술을 받은 4일부터 따지면 오늘(21일)로 딱 17일이 지났다. 아무리 회복력이 빨라도 그라운드를 마음껏 뛰어다니려면 적어도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앞선 질문에 대한 의학적 답변은 사실 ‘못 뛴다’에 가깝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대표팀 손흥민이 19일(현지시간) 카라드 도하 알에글라 훈련장에서 이승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손흥민은 지금 카타르에서 검은색 마스크 차림으로 동료들과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주장 완장을 찬 그는 수술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1% 가능성만 있다면, 그 가능성을 보며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고 했다. 그로선 서른 살 최전성기에 맞이한 월드컵을 단 1분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의 경기를 밤잠 설치고 지켜보던 팬들 역시 그가 이번 월드컵 최고의 영웅으로 발돋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프리미어리그와 A 매치에서 멋진 활약을 터뜨린 뒤 손흥민이 짓는 밝은 미소는 국민의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주는 ‘백만불짜리’ 청량제였다.
손흥민은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MBTI(자기보고형 유형지표)가 ESFJ라고 밝힌 적이 있다. ‘천성적으로 사교적이며, 인기쟁이로 다른 이를 웃게 해준다’는 게 이 유형 사람들이 갖는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손흥민이 4년 전 내건 러시아 월드컵 출사표가 ‘내가 웃게 해준다고 했지!’였다.
웃음이 트레이드 마크인 손흥민이지만,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2차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자신이 골을 넣고도 1대2로 지면서 16강 진출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방송 인터뷰 도중 “국민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며 갑자기 눈물을 쏟아냈다. 2014년 브라질에선 자신의 첫 월드컵 두 번째 경기인 알제리전에서 처음 월드컵 골 맛을 보고도 2대4 패배 후 땅을 치고 통곡했다. 벨기에와의 최종전 패배 때도 그의 눈물이 그라운드를 적셨다. 2016년 리우올림픽 8강전에선 비교적 약체로 평가된 온두라스에 0대1로 발목 잡히자 그라운드에 엎드린 채 펑펑 울었다. 그 장면을 보고 ‘너무 슬프게 울어서 내 가슴도 찢어질 듯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월드컵, 올림픽 등 국내 팬들의 기대가 걸린 빅 이벤트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시자, 그의 두 어깨에 짊어졌던 책임감이 패배의 아쉬움과 화학작용을 일으켜 눈물바다를 만들어냈다.
승부욕, 책임감 강한 손흥민은 다소 무리하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과거라면 “조국의 승리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겠다”는 각오를 밝히면 “당연히 그래야지” 같은 찬사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팬들이 무조건적인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 최근 손흥민의 출전과 관련된 기사에는 ‘절대로 무리하지 말아 달라’ ’월드컵 한 경기가 뭐가 중요한가’ 같은 우려성 댓글이 많이 달린다. 애매한 상태에서 이번 월드컵을 뛰다간 그의 선수 인생에 악영향이 올 수도 있다.
그래서 외국인 벤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벤투 감독은 철저하게 자기 원칙을 지키는 스타일이다. 선수의 이름값이나 국내 여론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1%라도 부족하다고 판단하면 천하의 손흥민이라도 그라운드에 내세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제발 그러길 바란다.
손흥민이 월드컵 무대에서 특유의 감아차기 슛으로 상대 골 그물을 세차게 흔드는 그 순간을 정말 보고 싶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그가 유럽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면서 수십, 수백 번 ‘백만불짜리 미소’를 국내 팬들에게 날려주는 모습을 더 오래, 더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