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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방비 폭탄 정의롭다’는 환경주의자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1. 27. 08:44
    26일 서울 용산구 한 주택의 가스계량기에 눈이 쌓여 있다. '난방비 폭탄'으로 국민불만이 고조되자 정부는 취약계층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금액을 올겨울 한시적으로 2배 인상하기로 했다./연합뉴스
     

    “저희 집에도 가스 요금, 난방비가 나오는데 갑자기 너무 많이 올라 깜짝 놀라서 ‘잘못 계산된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말이다. 물론 잘못 계산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요동친 천연가스 가격 인상의 여파가 지금에서야 우리의 피부에 와닿고 있을 뿐이다.

    러시아가 유럽을 향한 파이프라인을 잠갔다. 불안해진 유럽은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부랴부랴 다른 공급처를 찾았고, 그 과정에서 시장이 크게 교란됐다. 내려간 공급에 비해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요동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유럽은 올겨울 그리 춥지 않으나, 한번 흔들린 시장의 충격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이 지금 떨어진 ‘난방비 폭탄’의 실체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매끈한 그래프 하나로 정리된다. 하지만 현실은 울퉁불퉁하다. 균형을 찾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피할 수 없지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상적인 정부가 펼치는 상식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에너지 정책은 그렇지 않았다. 탈원전 과정을 복기해 보자. 마치 적장의 목이라도 치는 것처럼 월성 1호기를 폐쇄해 버리고, 전국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 태양광 패널을 깔았지만, 막상 결과를 보니 가스 발전 비율만 늘어났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17년 22.6%였던 LNG 발전 비율이 2021년에는 30.4%까지 늘어났다. 자체 비율로 따지면 4년 사이 약 35% 폭증한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 정권은 천연가스를 더 많이 쓰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자면 혈당이 급격하게 치솟는 흰쌀밥을 더 많이 먹도록 밥상을 차렸다. 오늘내일 큰일은 안 날 거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위험한 원자력을 버린다는 둥, 지구를 위한 기후변화 대응책이라는 둥, 온갖 미사여구로 ‘그린 워싱’된 에너지 정책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구미에 맞았을 것이다. 그렇게 편식하는 동안 나라 경제와 국민 살림에는 골병이 들었고, 입에 쓴 약을 권하는 책임은 온전히 다음 정권의 몫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탈원전을 외치고 신재생에너지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몰랐을까? 정권과 밀착한 환경 단체들의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지금 우리는 에너지 가격 인상 없이 깨끗하고 안전한 녹색 미래를 누리고 있었을 텐데, 단지 대내외적 여건이 악화되어 지난 정권이 지금까지 비판받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의 소매가격이 치솟는 것, 평범한 시민들이 더 높은 요금 청구서를 받는 것은 주류 환경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에너지 가격을 높여 ‘수요 관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환경주의자들이 에너지 가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시장 법칙을 존중하기 때문이 아니다. 원자력 대신 태양광과 풍력 같은 비효율적 발전원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시장 법칙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며 그 경제적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속해 있는 환경 단체다. 그 공동대표인 전영환 홍익대 교수의 2020년 7월 언론 기고문의 한 대목. “원가를 반영한 전기 요금 합리화는 사회적 비용, 외부 비용을 반영해 국민들의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고 에너지 효율 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용성 있는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 시대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렇게 전기 요금을 올려서 남는 돈을 어디에 쓸까? 태양광·풍력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여 ‘에너지 전환’에 보태야 한다는 주장이다. 태양광 업자의 통장에는 현금이 들어오는데, 평범한 시민들은 전기담요를 못 트는 밤, 찬물로 머리 감는 아침을 보내는 것, 그것이 ‘환경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녹색 미래의 청사진인 것이다.

    에너지전환포럼의 주장에도 옳은 면이 있다. 우리는 에너지를 아끼고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겨울을 보내던 시대는 러시아의 침략과 함께 끝났다. 에너지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그 목적이다. 태양광과 풍력을 늘리기 위한 에너지 절약은 환경주의를 앞세운 ‘에너지 약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환경, 에너지 담론을 근본부터 다시 살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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