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3.17/ 대통령실
지난주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싼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회담 규탄 집회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주할지 모른다”는 황당한 괴담을 늘어놓았다. 회담 직후부터 ‘삼전도 굴욕’ ‘일본 하수인’ 같은 극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방탄 정국’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돌려놓기 위해 이번 회담 비난에 총력을 쏟는 모양새다. 한국의 선제적 결단으로 성사된 정상 간의 만남에서 일본이 기대했던 호응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서 일반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회담 이후 발표된 각종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제 강제 징용 해법을 내놓았을 때부터 예상했던 여론의 흐름이다. 국민들 중 상당수가 우리 대법원이 일본 기업이 물어야 한다고 판단한 보상금을 왜 우리 기업이 대신 물어야 하는지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때부터 징용 문제가 다뤄진 과정이 워낙 복잡한 데다, 일본에 대해 오랜 기간 누적된 국민 정서가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머릿속에 새기면서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무조건 정상외교를 헐뜯으려는 억지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바로잡아야 하지만, 일반 국민의 아쉬워하는 감정마저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정상회담을 정당화하려는 조바심에 일본을 변호하려는 듯한 태도는 국내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 외교 참모가 일본이 그동안 여러 차례 사과했다면서 추가적인 입장 표명이 불필요하다는 식으로 해석될 발언을 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적절치 않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일본 기시다 정부는 다음 달로 예정된 보궐 및 지방선거를 앞두고 운신의 폭이 좁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자칫 선거에 부정적으로 작용할까 염려스러워 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적극적으로 맞잡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과 독도 영토에 대한 입장을 꺼냈다는 식의 일본 언론 보도가 흘러나오는 것은 놀랍고 실망스럽다. 기시다 정부가 그런 식의 언론 플레이를 했다면 어렵사리 마련된 관계 개선의 계기를 틈타 정치적 이해를 탐하는 소인배 행태라는 비난을 면키 힘들다.
한일 양국의 지난 정부가 파국으로 몰아넣은 양국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은 대단한 용기와 인내심을 요구한다. 한국은 서둘지 말고, 일본은 재 뿌리지 말고 조심스럽게 지금의 국면을 관리해 나가며 다음 국면으로 나아갈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