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지금 불쑥 현실로 다가온 AI의 위협에 떨고 있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간의 피조물이 인류 문명을 깊이 학습하여 인간의 고유 능력을 척척 정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세돌을 이기는 알파고 따위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기계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지어 부르고, 수술을 집도하고, 법률을 제정하고, 판결문을 쓰고…. 그러다 마침내 우리의 마음까지 훔쳐서 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는 기괴한 세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지금 벌써 이 정도인데, 한, 두 세기 후엔 과연 어떤 미래일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중국 해커 조직으로 추정되는 단체에게 해킹을 당한 한국동서정신과학회 홈페이지의 모습. 공공기관을 해킹하며 홈페이지에 남겼다는 ‘사이버 시큐리티 팀(Cyber Security Team)’이라는 영어, 샤오치잉(晓骑营·새벽의 기병대라는 뜻)이라는 한자(중국 간체자) 로고/한국동서정신과학회 홈페이지
물론 영악한 인간이 피조물의 노예로 전락할 만큼 어리석진 않을 듯하다. 기계의 반란을 막기 위해 인간은 철저하게 AI를 통제하고, 필요할 땐 간단히 파괴해버리는 정밀한 제어 장치를 마련할 터이다. 제아무리 영특해도 기계는 기계일 뿐, 어찌 인간의 간지를 당하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혼백도, 감정도 없는 AI의 대두가 아니라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 집단의 출현이다. 인간과 기계의 대립이 아니라 결국 인간 대 인간의 투쟁이라는 얘기다.
테러 집단에 핵무기가 들어가면 핵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 사악한 집단이 AI를 장악하면 그 이상의 재앙이 닥친다. 예나 지금이나 범죄의 동기는 질투, 시기, 탐욕, 증오 같은 인간의 원초적 감정이다. 그 점에서 ‘챗GPT’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 따윈 기껏 살롱의 가십거리일 수도 있다. 진정 가공스러운 점은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인류의 보편 가치를 짓밟은 전체주의 초강대국이 최첨단 AI 기술력을 장악하는 현실이다.
이미 중국공산당은 얼굴, 지문, 홍채, 걸음걸이 등 14억 개개인의 생체 정보를 가지고 전 인민의 행동거지, 사생활, 사유 습관까지 통제하는 명실공히 대륙의 빅브러더이다. 중국엔 그러한 중국공산당의 권력을 제약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 중국 헌법은 정부 권력의 분립 자체를 부정하는 의행(議行·의회와 행정부) 합일의 전일적 통치구조를 지향한다. 최후의 보루처럼 남아 있던 헌법의 국가원수 임기 제한 조항마저 시진핑 정권이 없애버렸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중무장한 전체주의 중국의 위협을 너무도 잘 알기에 미국과 유럽은 이미 중국 화웨이 제재에 나섰고, 최근에는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 ‘틱톡’ 제재까지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실제로 최첨단 장비를 통한 선거 개입, 언론 장악, 회유 협박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 진영 여러 나라에 대한 정치적 지배력을 확장해 왔다. 알든 모르든 우리는 날마다 실시간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자유 진영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부르짖는 중국공산당이 긴박하게 격돌하는 신냉전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분단 상황의 한국은 대만과 더불어 세계 신냉전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그렇기에 중국공산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국 정치에 직간접 개입하고 있다. 수도권 엘리베이터 TV의 90%를 장악한 한 회사 전체 지분의 50.4%를 중국 회사가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례에 불과하다. 중국공산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방면으로 한국에 대한 조용한 침략을 감행해왔다. 무엇보다 한국은 중국뿐 아니라 그 ‘리틀 브러더’ 북한이 펼치는 디지털 공격에 상시로 노출돼 있음을 망각해선 안 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2년간 북한의 정찰총국 산하 해킹 조직이 7회에 걸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격을 시도했다. 선관위가 북한 해킹 조직에 공격당했다면,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그 때문에 행정안전부와 국가정보원은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에 대한 보안 점검을 요구했지만, 선관위는 정당한 그 요구를 거부했다. 선관위는 대체 왜, 어떤 법적 근거로, 무엇이 구려서 7차례나 해킹당한 후에도 보안 점검을 거부하는가? 편중 인사, 편파 조치, 부실 관리, 부정 의혹, 고용 세습 등으로 공정성을 의심받는 선관위가 민주 선거를 관리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안전을 우려하는 국민은 모두 그런 질문을 던진다. 선거 관리에 동원되는 디지털 장비가 고도화될수록 해킹의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이미 2009년 전자투표기 사용을 위헌이라 판결했다. 차제에 정부는 선관위의 모든 활동을 전면적으로 감사하고 철저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AI의 위협은 자유 진영에 대한 전체주의의 위협이며, 결국 기계를 악용하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