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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에게 지금, 우주란 무엇인가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3. 5. 27. 09:05

    우리에게 지금, 우주란 무엇인가

    지난 25일 저녁 우리나라가 독자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2021년 10월 1차 발사와 2022년 6월 2차 발사 때는 위성 모사체와 성능검증위성을 실었지만, 이번 3차 발사 때는 처음으로 실용 위성 8기를 궤도에 올렸다. 199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과학로켓 1호(KSR-1)를 발사하며 우주발사체 개발에 나선지 꼭 30년 만에,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로 실용 우주수송 시대를 연 것이다.

    우주개발은 막대한 예산과 인력, 오랜 개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부가 주도해 추진해 왔다. 미국의 저명한 우주역사학자 하워드 매커디는 정부 주도의 대규모 우주 프로그램은 경제력, 기술력, 상상력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 비로소 안정적으로 추진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상상력이란 경제력과 기술력을 통해 우주개발을 한 방향으로 밀고 갈 수 있는, 국가의 미래상을 바탕으로 한 국민적 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우리나라는 그동안 우주개발에 대해 어떤 비전을 공유해 왔을까.

    한국 우주 산업은 자체 기술로 위성을 우주 궤도로 보낼 만큼 발전했다. 사진은 지난 25일 위성 8대를 실은 누리호가 발사되는 모습. /항공우주연구원

    역사적으로 우주개발을 주도했던 많은 국가는 막대한 정부 예산 사용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력의 상징으로서 자국 고유의 우주 기술을 강조하는 레토릭(수사)을 자주 사용해 왔다. 위성 영상이나 통신·항법 등 인공위성이 국가 운영의 주요 인프라가 되어 사회의 우주 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지금, 우리 기술로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인 수단을 확보하고 다양한 우주 자산을 운용하는 일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9년 10월 10일 한국기계연구소 부설 항공우주연구소를 설립하면서 국가 우주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지난 한 세대 동안 경제개발과 안전보장, 국민적 자긍심 고취 등을 목적으로 빠르게 우주개발 선진국을 추격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우주 강국’이나 ‘우주 독립’ 같은 슬로건을 사용하며 순수 우리 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전략이 항상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우주개발의 성과를 홍보하는 과정에서 ‘우리 것’을 강조하는 시도들에 대해 언론과 시민 사회의 비판이 줄곧 있어 왔기 때문이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는 우리나라가 영국 서리대학에서 기술을 배워 쏘아 올렸다는 이유로 ‘남의별’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2008년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 사업 때는 이소연 박사가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에 갔다는 이유로 ‘우주 관광객’ 논란에 휩싸였다. 2013년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발사했을 때 등장한 ‘우리가 만든 위성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라는 슬로건은 누리호의 1단 로켓이 러시아로부터 사온 것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슬그머니 사라졌다. 정부와 시민이 받아들이는 진정한 ‘우리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논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번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을 통해 위성과 발사체 기술에 대한 ‘우리 것’에 대한 일종의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극복하게 되었다. 나아가 선진국의 우주개발 영역으로 여겨졌던 유·무인 탐사나 위성항법시스템 구축에 나서면서 명실상부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췄다. 이제 선진국의 우주 기술을 추격하고 우리 기술에 대한 지나친 강조와 민족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우주개발의 비전을 넘어서야 한다. 선진국의 지식과 기술의 수혜를 받던 국가에서 인류 지식의 확장에 공헌하는 지식 생산국으로 도약할 새로운 우주개발의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주개발을 하는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실현과 경제적 이익의 추구뿐만 아니라 지구와 생명,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추구하는 데 있다. 이제 우주 탄생 기원과 진화를 규명하고, 지구 밖 생명을 찾고자 하는 인류의 과학적 도전에 동참하며 우주에 대한 질문을 우리의 문제로 정의하고 고유한 해결 방식을 통해 지식을 생산하고 축적할 수 있어야 한다. 달·소행성·화성 등 지구 밖 천체는 우리나라가 지식 생산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 영역이 되어야 한다.

    지식 생산국의 지위를 갖는 일은 국가 발전의 미래를 위해서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식을 ‘세계를 이해하고 관리하고 통제하기 위해 만든 매우 효율적인 추상 장치’라고 정의했다. 그동안 우주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등 개발의 주도권은 이러한 우주에 대한 지식과 이론을 만든 소수의 선진국이 가져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우주개발의 이권도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지식 확장에 공헌한 국가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각국의 우주 탐사 활동으로 우주는 인류의 새로운 활동 무대가 될 것이다. 나아가 우주는 차가운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메마른 공간에서 정치·경제·국제관계·사회문화·윤리 등 인간의 모든 활동이 얽힌 인간화된 공간으로 변모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우주사회를 살아갈 미래의 ‘우주세대’(Space Generation)에게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있는 활동 무대를 마련해 주는 일은 국가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책무다. 국가 우주개발의 새로운 체제를 설계하는 중차대한 시기를 맞은 지금,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우리에게, 우주란 무엇인가?

    2023년 5월 27일 조선일보  <안형준 국가우주정책연구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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